신학국 소식
제11장 목회사역
신성하게 부름을 받고 성서적으로 규정된 목회는 우리 주님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네 가지 목적을 위해 준비된 것이다: (1) 세계의 복음화(막 16:15-20). (2) 하나님을 예배함(요 4:23, 24). (3) 그의 아들의 형상에 따라 완전해져 가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엡 4:11-16). (4) 사랑과 긍휼의 사역으로 인간의 필요함을 채워주는 것(시 112:9; 갈 2:10; 6:10).
[하나님의성회 근본교리진술 제11조]
1. 목회: 용어의 이해
목회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성직자의 사역과 연관되지만,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 전체의 사역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목회는 교회가 행하는,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런데 목회에 대한 교회의 이해가 지난 세기 동안 상당히 변해왔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다시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1) 목회라는 단어는 신약에 나오는 다양한 말들을 번역하는데 흔히 사용된 것으로서 ‘디아코니아’ 및 그와 관련된 형태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 어군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겸손한 봉사”라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것은 종종 식탁에서 시중을 드는 종의 역할을 가리킨다(눅 10:40; 행 1:17; 6:4; 롬 12:7; 고전 16:5; 엡 4:12; 골 4:17; 딤후 4:5).
(2) 목회라는 개념은 동사 ‘레이투르게오’(눅 1:23; 고후 9:12; 빌 2:17,30; 히 8:6; 9:21)와 명사 ‘레이투르고스’(롬 13:6; 15:16; 빌 2:25; 히 1:7; 8:2)에도 나타난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사고 속에서 이 용어들은 “공중의 이익을 위해 하는 봉사”와 관련이 있었다. 이 용어들은 구약에서 성막과 성소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하는 봉사의 의미로서 칠십인역에서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에서는 대중적 봉사의 의미와 제사장적 의미에서 모두 이 어군을 사용한다.
(3) 세 번째로 중요한 어군은 동사 ‘히페레테오’(행 13:36; 20:34; 24:23)에서 나온다. 명사 ‘히페레테스’(마 5:25; 눅 1:2; 4:20; 행 13:5; 고전 4:1)는 “자발적 복종”이라는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윗사람을 섬기는 종속적 역할을 가리킨다.
(4) 목회사역은 동사 ‘포이마이노’(마 2:6; 요 21:16; 행 20:28; 벧전 5:2; 유 12)로 실감나게 묘사되는데, 이는 “목자의 사역”을 의미한다. 이것은 양떼를 먹이고, 보호한다는 개념이다.
(5) 목회에 사용되는 또 다른 중요한 단어는 동사 ‘오이코도메오’(마 16:8; 행 9:31; 롬 15:20; 고전 14:4; 살전 5:11; 벧전 2:5)인데, 이것은 문자적으로 “집을 건축한다”는 의미를 갖지만 신약에서는 은유적으로 “세움” 혹은 “교화(덕)”의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명사 ‘오이코도메’도 이런 의미로 자주 나타난다(롬 14:19; 15:2; 고전 14:3, 26; 고후 10:8; 엡 4:12, 16).
요약정리를 한다면, ‘디아코니아’와 이와 관련된 형태들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겸손한 봉사를 의미하며, ‘레투르기아’의 어군은 대중적 목회와 제사장적 목회를 강조한다. ‘히페레테스’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종속적 역할의 뜻이 있으며, ‘포이마이노’는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모습을 나타내며, ‘오이코도메오’는 교회의 덕을 세운다라는 의미가 있다.
2. 목회의 모델: 예수
신약은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서 분명하고 권위있게 목회를 가르치고 있고, 그분을 떠나서는 목회를 이해할 수 없음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므로 그 어떤 목회도 신약에 나타난 우리 주님의 삶과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1) 예수의 목회는 무엇보다도 성육신적이었다. 하나님이신 예수는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게 되었다.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은 생동적인 표현으로 이 진리를 드러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 1:14).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예수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즉 임마누엘(마 1:23)로 소개한 것도 이와 비슷한 이해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십자가의 속죄 희생을 통해 죄인들을 구원 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몸을 취하셨다.
(2) 예수는 자신의 목회에 케리그마적 성격을 강조하셨다. 케리그마에서 나온 “설교”란 말은 복음선포에 있어서 그 중심적 위치를 잘 보여준다.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께서 성경을 가르치실 때보다 이것이 더 분명히 드러난 적이 없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유앙겔리조마이]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케릿소],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케릿소] 하려 하심이라”(눅 4:18, 19).
(3) 예수의 목회는 성령의 능력(카리스마)으로 이루어졌다. 복음서들은 예수가 공적 활동을 하시기 전에 목회를 시작하실 때 세례를 받으시자마자 성령이 임하신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마 3:16; 막 1:10; 눅 3:22; 요 1:32). 성령의 임재가 예수의 사역에 충만하여 성력의 능력이 기름부음과 같이 넘치게 되었다. “요한이 그 세례를 반포한 후에...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행 10:37, 38). 예수 자신도 기적을 행하실 때 성령의 능력을 종종 언급하셨다(마 12:28; 눅 4:14, 18).
(4) 예수의 목회는 겸손한 봉사(디아코니아)였다. 자기 유익만 추구하는 제자들의 본능에 반해서, 예수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값진 봉사에 대해 언급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디아코네세나이]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디아코네사이]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누가는 같은 맥락에서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다. “나는 섬기는[디아코네오]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최후의 만찬 때 서로 경쟁을 일삼는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 만큼 예수의 태도가 놀랍게 묘사되었던 적은 없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 13:14).
(5) 예수의 목회는 목자의 사역(포이멘)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서 그의 양떼를 모두 알고, 그들을 물과 초장으로 인도하는, 믿음직스럽고 배려심이 깊은 목자로 묘사했다(요 10:1-18). 선한 목자로서 그분은 모든 위험들 사이에 양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다. 결국 양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준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요 10:11, 15, 17, 18). 그는 “큰 목자”(히 13:20),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벧전 2:25), “목자장”(벧전 5:4) 등으로 불린다. 예수의 목회는 결국 인류의 죄를 위한 대속물로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는 가운데 완성되었다(마 26:28; 막 10:45).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의 삶을 모두 바치셨다.
3. 예수사역의 확장으로서의 목회
복음서
예수께서 스스로 설립하실 교회(마 16:18)를 통해서 자신의 목회를 확장하실 계획이 복음서에 나타난다.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게 하실”(막 3:14) 제자들을 선정하여 부르신 일이 그분의 초기 사역 가운데 하나였다.
죽음과 부활 후에 그리스도는 사도들에게 그의 목회를 계속 수행하라고 위임하셨다. 부활하신 주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신적 권세로 그들에게 명령하셨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 20).
다른 복음서들도 다른 방식으로 이 위임명령을 강조한다. 누가는 예수께서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죄의 회개와 용서의 설교를 예고하셨다고 언급한다. 제자들은 그의 증인이 될 것이며, 이러한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곧 약속된 하늘의 능력을 받을 것이다(눅 24:48, 49).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라고 하셨다.
사도행전과 서신서
사도행전의 기사를 보면 제자들이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찾은 것을 볼 때, 예수로부터 시작되어서 지속되는 목회에 대한 인식이 분명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사바와 맛디아를 놓고 제비를 뽑을 때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행 1:24, 25). 초대교회의 복지사역을 감당할 일곱 사람을 선발할 때 사도들은 자신들의 말씀 사역(행 6:4)의 우선순위를 잘 인식했다. 초대교회의 주된 사역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케리그마)였다.
이러한 목회의 인식은 예수의 처음 제자들이나,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아마도 여러 다른 사람들까지 포함하는 사도들의 집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동역자들은 두기고(엡 6:21), 에바브라(골 1:7), 디모데(딤전 4:6)도 사역자(디아코노스)로 불렀다. 스데반(고전 16:15), 아킵보(골 4:17), 마가(딤후 4:11)와 같은 사람들도 목회(디아코니아)에 동참한 것으로 소개된다. 자격을 갖춘 장로들도 각각 선교지 교회에서 선출되어 기도 가운데 목회(디아코니아)를 위한 위임을 받았다(행 14:23).
4. 목회에서의 성령의 역할
목회에로의 부르심
성경은 목회에의 신적 부르심에 대한 개인적 인식을 말하는 내적 소명과, 성령께서 선택된 사람들을 정하셨음을 모든 사람에게 입증하는 외적 소명이라는 교회의 전통적 개념을 지지한다. 목회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그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초자연적으로 성령의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할 필요가 있다.
목회에 입문하게 된 바울 자신의 이해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바울은 자신의 “부름받음”(롬 1:1)을 확신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신학 훈련을 받았다(행 22:3). 그러나 그의 목회의 근본 성격을 언급할 때 성령의 내적 역사에 관해 그가 말했다는 것은 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의 사역자가 되도록 하기 위해 성령의 능력이 그에게 부여된 것이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 3:7).
목회자의 영적 자질
목회를 위한 영적 자질의 필요성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삶 속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강림하신 것은 목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예수는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지시하셨다(눅 24:49; 행 1:4, 5). 오순절날 성령의 부으심이 있은 후에 비로소 그들은 대중 목회에 결정적으로 돌입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의 목회는 단순히 전문성이나 행정 능력으로써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지혜로 수행되었다. 이러므로 오순절의 성령세례와 잇따른 성령충만한 삶은 목회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목회자들을 준비시키는 데 필요한 주권적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한 동일한 감각은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권고할 때에도 나타난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행 20:28). 바울이 장로들에게 위임식을 거행했을 때 그는 성령의 선행하는 강력한 역사를 깊이 인식했다. 위임식은 단지 이 사역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5. 목회에 필요한 은사들
성령의 은사부여
성령의 일차적 역할은 목회에 구체적으로 필요한 은사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신약은 이것을 가리켜서 “신령한 은사”(롬 1:11)라고 한다. 이 은사들은 헬라어 카리스마라는 단어와 동일시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이것은 “신령한 은사”를 의미한다. 또한 “신령한 은사”는 때에 따라서 “신령한 것”(프뉴마티코스, 고전 12:1; 14:1)과 “선물”(도마, 엡 4:7)이라는 단어의 뜻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프뉴마티코스]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고전 12:1).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도마]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엡 4:7).
다양한 신령한 은사들은 신약에서 이미 관찰된 목회의 광범위한 확산이 수반되며 이를 효과적으로 만든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개개인에게 한 가지 이상의 특별한 목회사역을 위한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 성령의 특별한 손길이 미친다. 모든 성도의 은사부여라는 일반적 개념이 신령한 은사들을 다루는 다른 본문들에서도 발견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카리스마]가 각각 다르니”(롬 12:6). 이와 비슷한 강조가 베드로전서 4장 10절에 나타난다. “각각 은사[카리스마]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디아코네오].”
아홉 가지 은사
고린도전서 12장 8-10절에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등의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가 있다. 이 은사들 가운데 몇 가지가 로마서 12장 6-8절, 고린도전서 12장 28-30절,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록에도 나온다. 아홉 가지 은사들은 순종적이고 영적으로 민감한 신자들을 사용하시려는 성령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항상 놓여 있는 초자연적이고 자발적인 것으로 쉽게 인식될 것이다.
그 밖의 은사들
그러나 이 은사들의 목록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들 중에서 은사(카리스마), 신령한 것(프뉴마티코스), 선물(도마)과 동일시되는 것들도 교회의 사역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은사들이다. 그것들은 섬기는 일(롬 12:7), 가르치는 일(롬 12:7), 위로하는 일(롬 12:8), 구제하는 일(롬 12:8), 다스리는 일(롬 12:8; 고전 12:28), 긍휼을 베푸는 일(롬 12:8), 서로 돕는 일(고전 12:28) 등이다. 이런 은사들은 초자연적인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지만, 분명히 성령의 활동에 기인한 것이다. 성령은 신자들이 교회의 봉사 사역에 있어서 그분을 의지할 때 그들이 규칙적으로, 활동적으로, 성실하게 쓰임 받을 수 있게 해준다.
이와 같이 열거된 은사들이 아마도 교회의 목회사역에 필요한 대부분을 나타내기는 하지만 신약의 기자들이 완벽한 목록을 의도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이유는 없다. 예를 들어서, 신약에서 “신령한[프뉴마티코스] 노래들”(엡 5:19)이라는 언급이 있기는 하지만 음악의 은사에 관한 말은 없다. 구약에서는 손재주의 은사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돌린다(출 31:2, 3). 성령께서 구체적인 필요에 따라 교회에 부여하시는 다른 은사들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적으로 타당하다. 실제로 바울은 다양한 은사들을 보여주기 위해서 특별히 신경을 썼던 것 같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직분[디아코니아]은 여러 가지나...사역[에네르게마]은 여러 가지나...”(고전 12:4-6).
은사들의 목적
각각의 경우에서 은사들은 교회의 상황에 맞게 준비되고,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그리고 목회를 위해 준비된다. 로마서 12장 6절의 “여러 가지 은사들”을 말하기에 앞서 바울은 교회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했다.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5). 고린도전서 12장 28-30절의 은사의 목록도 이와 유사한 서문을 달고 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에베소서 4장 11절에서 은사자들을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엡 4:12) 하는 것이다. 은사들의 목적이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 분명하게 언급되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신령한 은사들은 대체로 회중의 덕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이 은사들의 유일한 정당성은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 미성숙한 고린도 교인들은 거만한 과시 행위로 말미암아 은사들의 의미을 손상시켰다.
6. 전 성도들에게 속한 목회
목회는 성직자와 같은 특별한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사역이다. 목회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모든 개개인 구성원들에게 주어진다. 어떤 의미에서 모든 성도들은 목회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유능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홀로 모든 범위의 신령한 은사들을 구현하거나, 교회의 일을 행하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와 동력을 제공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평신도의 사역은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데 필수적이다.
모든 신자들은 성령충만의 체험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행 2:17, 18). 신약의 교훈적 가르침이나 역사적 예증은 모두 다양한 종족의 배경을 가진 남녀에게 교회의 목회를 위해서 성령충만이 부여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령은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 주신다(고전 12:11). 신자들은 다양한 은사들이 가능한 한 폭넓게 부여 받는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덕과 봉사를 위한 목회에 헌신하고, 또 계발해 나갈 것을 결심해야 한다.
7. 목회의 목적
목회는 교회의 네 가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1) 세계복음화(막 16:15-20), (2) 참된 예배(요 4:23, 24),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엡 4:11-16), (4) 구제사역(시 112:9; 갈 2:10; 6:10).
세계복음화
예수는 그의 사역선언(mission statement)에서 그의 사역이 성령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눅 4:18). 그리고 그는 복음을 증거하셨고, 또한 기사와 이적, 신유와 축사를 행하셨는데 이것은 복음을 수용하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활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세계복음화를 명하셨다(막 16:15).
복음전도는 좋은 소식, 즉 구원의 소식을 선포하고 증거하는 것이다. 복음전도의 목적은 불신자를 회심케 하여 신자로 만드는 데 있다. 사도행전에서는 복음전도로 교회가 세워지고, 교회를 통하여 복음전도가 계속되는 과정의 연속으로 나타난다. 오순절날에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은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를 향하여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여 마침내 전 세계에 이르게 되었다. 세계복음화의 방법은 (1) 성령으로 충만하여 (2) 복음을 전파하고 (3) 귀신을 쫓아내고 (4) 방언을 말하고 (5) 기사와 이적이 일어나고 (6) 병든 자를 고치는 것이다(행 1:8; 막 16:15-20).
참된 예배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신자의 합당한 경외의 행위이다. 신자는 두 가지 질문, 즉 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한다. 그 대답은 요한복음 4장 23-24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프뉴마]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프뉴마]과 진리[알레데이아]로 예배할지니라”(요 4:23, 24).
(1) 하나님은 참된 예배를 받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참된 예배를 받기 원하신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의 구약시대에서 참된 제사를 드리지 않아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제사도 받지 않으셨다고 말한다(말 1:7-10). 그럼 참되지 않은 제사란 무엇인가? 더러운 제사(말 1:7), 악한 제사(말 1:8), 율법에 따라 드리는 않은 번제와 그 밖의 제사(히 1:6, 8)를 말하는데, 하나님이 이것들을 기뻐하지 않으셨다고 하신다. 그럼 참된 예배는 무엇인가? 참된 예배는 거룩한 산 제사(롬 12:1), 영적 예배(롬 12:2)를 말하며, 하나님은 이러한 예배받기를 기뻐하신다. 이 뿐 아니라 선행과 나눔의 제사를 기뻐하신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 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2)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이다.
참된 예배는 영(프뉴마)으로 드리는 것이다. 영의 예배는 인간의 가장 귀한 실체(영)안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한다. 영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예배자가 영으로 드려야 하는 이유는 예배받는 자가 영이시기 때문이다. 영은 영으로 만나야 진정한 만남이 있는 것이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몸이나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실체로 드리는 것을 말한다. 또한 영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하는데 성령의 임재가 있는 예배는 참된 예배이며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신다.
참된 예배는 진리(알레데이아)로 드리는 것이다. 진리의 예배는 인간의 전통과 유전(유대와 사마리아)에 의한 방법이나 어떠한 다른 예식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마태는 “사람의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일”에 대해 예수의 책망을 언급했다(마 15:9). 두 번째 의미로서 진리의 예배는 거짓이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존경하되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예배를 헛된 예배라고 단정한다(마 15:8, 9).
그리스도의 몸을 세움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는 이 일에 있어 중요한 직분자들을 택했다. 그들은 사도와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와 목사와 교사이다. 교회는 이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그리고 복음전하는 자의 수고 위에 세워졌다. 그리고 세워진 교회의 목회를 위해 목사와 교사를 택하셨다. 주님께서 이러한 직무자들을 세우신 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은 모두의 수고와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또한 각자가 받은 은사를 따라 각각 봉사하므로 이루어지는 일이다(엡 4:11-1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것은 온 성도가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온 성도가 다 함께 성숙한 교회를 이루어가는 것을 말한다. 에베소서 4장 13절의 온전한 사람들이란 완전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기보다는 성숙한 사람들이며, 성숙한 신앙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되는 것으로 이러한 일을 이룰 수 있다(엡 4:13).
구제사역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사역 중 하나가 구제사역이었다. 구제사역이 많아지자 이 사역은 일곱 사람(집사)에게 위임되었다. 초대교회에서 말씀증거와 구제라는 두 가지 사역에 치중한 것을 보면 구제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구제사역은 다음과 같다.
(1) 가난한 과부들에게 음식을 공급함(행 6:1-7)
(2) 가난한 과부들에게 옷을 나누어줌(행 9:36-42)
(3) 기근 때에 경제적인 원조(행 11:27-30)
(4) 가난한 성도를 위해 구제금을 전달함(고후 9:7)
(5) 과부를 돌보는 일(딤전 5:3-10)
(6) 가난한 형제나 자매를 돌보는 일(약 1:15-17)
(7)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약 2:27)
(8) 나그네 대접(히 13:2)
마태복음 25장 35-46절의 심판 이야기에서 구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1)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주고 (2)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고 (3) 나그네를 영접하고 (4) 벗은 자에게 옷을 주고 (5) 병든 자를 돌보고 (6)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이 예수께 한 것이라고 하였다. 구제사역의 여부에 따라 영생과 영벌의 결과로 나타났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것이 이웃사랑이다(눅 10:36, 37). 이웃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증명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구문제
1. 당신에게 목회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엇인가?
2. 예수의 목회 중 어떤 사역을 가장 닮고 싶은가?
3. 우리의 목회는 누구를 위한 목회인가?
4. 왜 성령이 목회에 필요한가?
5. 당신은 목회하는데 있어서 무슨 은사를 원하는가?
6. 왜 모든 성도가 목회자라고 할 수 있는가?
7. 목회의 목적 중 구제가 왜 중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