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국 소식
제2장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
한 분이신 참된 하나님은 자신을 영원히 자존하시는 “스스로 있는 자”로, 하늘과 땅의 창조자로, 인류의 구속자로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자신을 아버지, 아들, 성령으로서의 관계와 연합의 원리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나타내셨다(신 6:4; 사 43:10, 11; 마 28:19; 눅 3:22).
[하나님의성회 근본교리진술 제2조]
1. 경배받으실 하나님: 삼위일체
(1) 용어의 정의
하나님과 관련된 용어 “삼위일체”와 “인격”은 성경에서 발견되지는 않지만 성경과 조화가 되는 단어이며, 따라서 “많은 신과 많은 주”로부터 구별되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련된 그리스도의 교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이해되도록 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주님이신 주, 우리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또는 세 인격의 한 존재로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여전히 절대적으로 성서적이다(마 28:19; 고후 13:13; 요 14:16, 17).
(2) 하나님 안에서의 구분과 관계
그리스도는 하나님 안에 있는 인격의 구분을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는 특별한 용어로 표현하여 가르치셨다. 그러나 이 구분과 관계에 관한 그 양식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설명이 되어있지 않기때문이다(눅 1:35; 마 11:25-27; 28:19; 고후 13:13; 요일 1:3, 4).
(3) 아버지, 아들, 성령의 한 존재로서의 연합
아버지를 아들이 아닌 아버지로 되게 하는 것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들을 아버지가 아닌 아들로 되게 하는 것은 아들 안에 있으며, 성령을 성령으로 되게 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성령 안에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낳는 자, 아들은 낳음을 입은 자,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온 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안에 있는 이 세 인격은 연합의 상태에 있기때문에 오직 한 분이신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있으며, 그의 이름은 하나이다(요 1:18; 요 15:26; 요 17:11; 요 17:21; 슥 14:9).
(4) 하나님 안에서의 정체성과 협력
인격에 있어서 아버지, 아들, 성령은 동일하지 않으며, 관계에 있어서 혼동되지 않으며, 하나님(신격)에 있어서 분리되지 않으며, 협력에 있어서 대립되지 않는다. 관계에 있어서, 아들은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신다. 교제에 있어서,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으며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있다. 권위에 있어서, 아버지는 아들로부터 오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온다. 본질, 관계, 협력, 권위에 있어서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하나님(신격) 안에서 인격은 다른 인격으로부터 분리되게 또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역사하지도 않는다(요 5:17-30, 32, 37; 8:17, 18).
(5) 주 예수 그리스도의 칭호
칭호 “주 예수 그리스도”는 고유명사이다. 이 칭호는 신약에서 아버지에게나 성령에게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칭호는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에게 속한다(롬 1:1-3; 요이 1:3).
(6)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과 영원성에 있어서 아버지의 완전한 독생자이며, 인성에 있어서는 완전한 인자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사람으로 인정된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이기때문에 “임마누엘”, 즉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시다(마 1:23; 요일 4:2, 10, 14; 계 1:13, 17).
(7) 하나님의 아들의 칭호
“임마누엘”이란 이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안에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포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그의 완전한 신성을 말하는 것이며, 인자라는 칭호는 그의 완전한 인성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영원계에 속하며 인자란 칭호는 시간계에 속한다(마 1:21-23; 히 7:3; 1:1-13; 요일 3:8; 요이 1:3).
(8) 그리스도의 교리로부터 이탈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또는 구속의 경륜에 관계되었다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가 유래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교리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실재하며 영원한 아버지임을 부인하는 것, 아들이 실재하며 영원한 아들임을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안에서 구분과 관계를 부인하는 것이며,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셨다는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다(요이 1:9; 요 1:1, 2, 14, 18, 29, 49; 요 2:22, 23; 요일 4:1-5; 히 12:2).
(9)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높임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깨끗케 하시고, 높은 존귀의 우편에 앉으셨며, 천사들과 정사들과 권세자들이 그에게 복종하였다.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후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의 이름으로 무릎을 꿇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세상 끝날까지 고백하게 하신다. 그 때 아들은 아버지께 복종할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 만물 위에 계시기 위함이다(히 1:3; 벧전 3:22; 행 2:32-36; 롬 14:11; 고전 15:24-28).
(10) 아버지와 아들에게 동등한 공경
아버지는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므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들에게] 무릎을 꿇는 것은 명백한 의무일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신적인 모든 속성들을 아들에게 돌리는 것,
그리고 관계성을 나타내는 것을 제외한 모든 하나님의 이름과 칭호들 안에 담겨있는 모든 존경과 영광을 아들에게 드리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공경하듯이 아들을 공경해야 한다(요 5:22, 23; 벧전 1:8; 계 5:6-14; 빌 2:8, 9; 계 7:9, 10; 계 4:8-11).
2. 영존하시는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세에게 계시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을 그의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한 후 야웨라고 말했다. 모세는 그의 조상의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의 하나님을 알고 있었지만,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자기를 보내신 자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를 하나님께 물어보았다. 모세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즉 조상의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름을 묻는 통상적 방법의 히브리어 의문대명사 “미”를 사용하지 않고, 이름의 의미 또는 본질에 대한 물음을 알기 위해 “마”를 사용하였다.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 3:13).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라고 대답했다(출 3:14). 이 이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야웨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면 야웨의 의미는 무엇인가?
(1) 야웨란 스스로의 생명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 안에 생명의 근원을 갖고 계시는 자라는 뜻이다. 스스로의 생명을 갖고 자신 안에 생명의 근원을 갖고 계신 야웨는 또한 생명을 나눠주는 본질적 특성을 갖고 계신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시고 그곳에 함께 계셔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2) 야웨란 하나님의 영원한 자존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하나님은 자존자이시기 때문에 비존재라고 생각할 수 없다. 시편 저자는 말한다. “산이 생기기 전에,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기 전에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시 93:2).
야웨 즉 영존하시는 스스로 있는 자의 속성은 첫째로 그는 그의 존재 근거를 자신 안에 가지고 계시며(출 3:4), 그 속성에 있는 필연적 존재이며,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으시고 독립적으로 존재하신다(요 5:26). 둘째로 그는 그의 정체성, 목적, 의지, 작정, 계획에서 보여지는 것같이 그의 존재와 본질에 있어서 불변하시다(말 3:6). 셋째로 그는 모든 것으로부터 무한하신데, 본질적 무한성(시 145:4), 시간적 무한성(시 90:2; 102:26), 공간적 무한성(렘 23:24)을 가지고 계신다.
3. 하늘과 땅의 창조자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사 45:18). 다른 피조물은 단지 흙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창조자와 간접적인 관계밖에 없으나 사람은 하나님의 생기를 들이마신 특별하게 구별된 피조물이어서 하나님의 창조적 활동의 직접적인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창 2:7).
천지창조와 인간창조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 그리고 사람을 만드셨다(창 1-2장). 6일 동안의 창조기간 중에 빛, 궁창(하늘과 바다), 땅(식물), 별들(태양, 달과 별들),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땅위의 짐승과 사람을 지으셨다. 하나님은 물고기와 새들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다. 또한 땅의 생물과 육축과 땅에 기는 것들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다. 각각의 생물들은 자기의 종류 안에 다양성과 복합성을 나타내며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지음을 받았다. 인간의 창조가 맨 나중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인간을 만드시기 위해 모든 것들을 준비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창 1:26, 27). 즉 인간은 가장 지고하게 피조된 생명의 형체이다. 인간은 이 땅위에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 주신 다른 피조물을 돌보며 다스리는 임무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피조된 존재로서 임무 수행을 감당할 수 있게 부여받은 능력이 크다. 시편 기자는 “저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시 8:5-7) 라고 증언한다.
말씀으로 창조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졌음을 진술하고 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창조 기사의 특징은 창조과정의 새로운 단계가 시작될 때 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관용구가 있다는 점이다. 모든 창조 과정에서 하나님의 자유롭고 자발적인 활동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외에도 구약기자들은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했다고 언급한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니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사 45:12).
신약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창조가 이루어졌음을 증언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또한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창조의 의미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세계와 그 안에 거하는 모든 피조물은 그의 질서 안에 있다. 그러므로 창조주와 피조물 간에 존재하는 관계에는 “자연”의 개념이 없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 8:22)라는 표현은 하나님은 언제나 세계를 통제하고 다스리시는 분이란 것을 묘사한 것이다.
창조가 있기 전에는 현상학적인 존재 또는 실체에 관한 어떤 다른 유형도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 “무로부터 창조”의 개념은 물질이 영원하다는 잘못된 개념을 배제시킬뿐만 아니라, 이 우주 안에 하나님의 통제를 벗어나 자존할 것이라는 어떤 실재나 세력에 관한 개념을 배제한다. 또한 무로부터의 창조의 개념은 하나님이 그의 창조하신 피조물과 구별되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확증하고 있으며, 범신론의 주장과는 대조를 이룬다. 창조의 의미를 혼돈된 피조물을 질서정연하게 한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혼돈의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
4. 인류의 구속자
구속은 “값을 치루고 구해내는 것”을 뜻한다. 이 구속은 속박, 적, 환란, 죽음, 질병, 죄에서 구해줌을 의미한다(출 6:6; 시 25:22; 49:15; 호 13:4). 하나님이 구속자로서 처음 나타난 때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압제 당할 때 하나님은 어린 양을 제물로 삼아 그의 백성을 구출하셨다. 유대인들은 메시아의 출현을 이스라엘의 구속으로 믿었으며(눅 2:38),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다(롬 11:26, 27).
그리스도의 구속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의미한다. 사도들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의 사역은 구속적이었다. 그들이 언급한 구속은 구원의 일반적인 의미로 쓰인 것이기보다는 “값으로 사다”라는 개념을 강조한 것이다(행 20:28; 고전 6:20; 엡 1:7; 벧전 1:18; 계 5:9). 예수도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속전으로 주시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셨다(딤전 2:6). 속전, 값, 사심, 속량 등은 그의 죽음으로써 우리를 구하셨음을 비유적으로 말씀한 것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분노와 모든 죄에서 구하신 것을 의미한다. 특히 바울은 이 구속의 개념을 가장 잘 설명했다(롬 3:23-25; 고후 5:18-21; 갈 3:10-13; 4:4, 5; 딛 2:14).
그리스도의 속죄는 사람들을 죄에서 해방시키며, 정죄를 무효케 해주며 (롬 8:1, 33, 34), 죄의 지배, 사탄의 압박, 악한 세상, 모든 죄(롬 6; 갈 1:4; 딛 2:14; 히 2:14)에서 구해주며, 또한 죽음에서 구해준다(롬 8:23). 그의 죽으심은 악에서 구하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게 한다(롬 6:23).
연구문제
1. 삼위일체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2. 어느 성경구절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를 언급하는가? 한 구절만 찾아 설명하시오.
3. 야웨의 의미는 무엇인가?
4. 창조의 의미는 무엇인가?
5.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6. 하나님은 왜 인류를 구속하셨는가?
7. 하나님은 어떻게 인류를 구속하셨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