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인간의 타락

 

인간은 선하고 정직하게 창조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발적인 범죄로 타락하게 되었고, 그래 결과 육체적인 죽음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을 초래했다( 1:26, 27; 2:17; 3:6; 5:12-19).

[하나님의성회 근본교리진술 제4]

 

1.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인간이해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른 창조물을 만드실 때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지만 인간은 그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드셨다고 기록한다. 형상(체렘)과 모양(데무쓰)이란 두 표현에는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이 두 용어는 유사어이지만 개념의 차이가 있다. 형상은 새기다는 의미를 가진 동사로부터 유래된 단어로 조각된 형체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반면에, 모양은 비슷하다는 의미를 가진 어근으로부터 파생된 단어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형상이란 말은 하나님은 원형이요 인간은 하나님의 모형이란 뜻이며, 모양은 모든 면에 있어서 원형과 일치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뜻이다. 이러한 병행법에 의해 인간은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한다. 인간이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인가에 대해 하나님의성회는 두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로 인간은 선하다는 것이며, 둘째로 인간은 정직하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속성이 선함과 정직함이라고 표명한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오니( 25:8). 선함과 정직함은 한 쌍의 속성인 것으로 나타난다( 25:8; 125:4; 7:2). 여기에서, 하나님의 속성 중 세 가지를 더 소개한다면 거룩함, 의로움, 그리고 사랑일 것이다.

 

선함

 

하나님은 선하시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25:8). 선하신 하나님이 인간을 선하게 창조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보기에 매우 선하다(좋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선함이 인간의 형체에 주입된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언제든지 인간과 함께 하는 속성이다. 다윗은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23:6)라고 증언하고 있다.

 

선함이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토브)을 통하여 인간에게 주입하신 그의 선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1) 하나님의 선하심은 인자 그리고 용서와 관련되어 있다. 시편 기자는 인자에 관해서는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100:5)라고 선포하고 있으며, 용서에 관해서는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86:5)라고 언급하고 있다. (2) 신약에서 선함이란 예수님이 선한 목자라고 자칭하신 구절을 통하여 두 가지로 해석이 되는데 자신의 희생과 상대방의 배려 혹은 이해를 의미한다( 10:11-15). 이 뿐만 아니라 선함이란 이웃사랑과 구제로도 표현된다( 19:17-21).

 

인간은 선하게 창조되어 선을 행할 수 있는 인격이 있었지만, 인간은 선 대신 악을 취하여 악한 행위를 하게 되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악에 대한 호기심이며, 선악과를 먹음으로 악한 일을 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악한 마음이 인간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선한(착한) 행위를 하게 된다.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해야 하며, 특히 신자들에게 더욱 그렇게 해야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6:10). 또한 바울은 교회 안에서 신자들과 목사 간에 선한 일을 해야한다고 가르친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6:6).

 

정직함

 

하나님은 정직하시다. 여호와는정직하시니( 25:8). 그는 정직하신 분이시므로 그의 말씀이 정직하시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33:4). 그는 존재와 행위와 말씀에 있어서 참되시므로 그에게는 기만이나 거짓이 전혀 없으시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신다( 23:19). 인간의 정직한 도덕성을 통해서 하나님의 정직함이 나타난다. 정직한 자에게는 주의 정직함을 보이시며(삼하 22:26; 18:25).

 

하나님은 정직하시므로 그의 백성들에게 정직함을 요구하신다. 그의 백성은 말과 행위에 있어서 거짓이나 위선이 없어야 한다. 말을 삼가지 않는 것은 사실을 과장하여 진실과 멀어지게 된다. 오직 너희 말이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5:37). 훼방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짓 증거하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기만적인 책략과 의도적인 행위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교회와 성도들이 순전한 삶을 살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가 되게 하셨다.

 

정직함은 악함과 반대되는 것으로 나타나며( 1:8; 2:3), 악한 자와 정직한 자가 서로 대립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12:4; 37:34). 정직한 자는 죄악을 벗어나야 하며( 18:23; 19:13), 죄악을 떠나야 한다고 가르친다( 16:17). 정직한 자의 보상은 주의 의를 얻는 것이며( 36:10), 기쁨을 얻는 것이며( 97:11), 자손의 복을 얻는 것이며(112:2), 흑암 중에 빛을 비추는 것이며( 112:4), 주의 앞에 거하는 것이며( 140:13), 구원을 얻는 것이며( 11:6), 좋은 것을 얻는 것이다( 28:10).

 

거룩함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6:3; 43:3). 하나님이 자신을 처음으로 야웨로 나타나실 때 그의 거룩함을 모세에게 보이셨고( 3:5), 그 후 줄곧 이스라엘에게 그의 거룩함을 강조하셨다( 3:5).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속성 중 거룩함이 이스라엘에게 처음으로 나타나신 것인데,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거룩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시내산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렵고 떨리는 거룩한 하나님으로 각인되었다.

 

거룩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무엇보다 거룩을 요구하셨다. 이것은 그의 형상으로 만든 자녀들에게 당연한 일이다. 제사법을 보여주는 레위기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거룩하게 제사드리는 법이요,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방법을 가르친다. 신약에서도 구약에서와 같이 거룩하라고 명령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11:45; 벧전 1:16). 신자의 거룩함을 위해 첫째로 거룩한 산제사를 드리는 것이며( 12:1), 둘째로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16:16; 살전 5:23, 26).

 

그러면 거룩의 정의는 무엇인가? 히브리어 카다쉬는 하나님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관련된 모든 것, 즉 신성함을 말한다. 소극적인 의미로는 악과 우상, 부정한 것이나 세속적인 오염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헬라어로는 하기오스인데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하고 신성한 것을 의미한다.

 

의로움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대하 12:6; 9:8). 히브리어의 체댁은 의로운 사람을 신원하고 보상하고 악인을 처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헬라어의 디카이오스는 의롭고 공명정대하다는 의미가 있으며, 또한 법에 일치되게 살아간다라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그의 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율법과 규례를 주셨다. 그들이 위반할 때 하나님의 징계가 따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는 인간에게 있는 어떠한 불의도 묵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신 의로움의 본성이 의를 추구하게 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요( 5:6). 이 산상수훈은 인간에게 의를 추구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통치의 기초가 된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89:14; 97:12). 의는 공의로 나타난다. 즉 의로운 하나님은 공의를 행하신다. 공의의 하나님은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신다( 103:6). 하나님은 공정하고 공평하게 판단하시며, 형벌과 상급, 옳고 그름을 판단하신다( 2:7-8).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라고 부른다( 2:5).

 

사랑

 

하나님은 사랑이시다(요일 4:8). 히브리어로 사랑이란 단어는 아합인데 신의 사랑과 인간의 육적인 사랑을 말한다. 헬라어로 사랑은 명사 아가페와 동사 아가파오로서 사랑, 친절한 관심, 희생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3:16).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아들을 죽이심으로 나타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5:6, 8).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에게 심어져 있으니 그 사랑이 인간의 삶속에 나타나야 한다. 예수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다( 12:30). 예수는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다(12:31). 또한 예수는 그의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지시하신다( 13:34-35). 사랑을 하는 것이 그의 자녀라는 증거이다.

 

2. 자발적인 범죄

 

하나님이 인간으로 하여금 범죄에 이르게 하는 동기를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미혹에 의해 스스로 죄를 지었다. 하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고 사탄의 거짓에 유혹되었다. 그래서 하와는 육체적 식욕과 미적 추구와 선악에 대한 지식의 소유에 심취하게 되어 죄를 범했다. 인간의 첫 번째 죄는 하나님이 금지한 열매를 인간 자신의 욕구로 따먹은 행위이다. 이 행위는 하와의 의지로 나타난 결과였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와의 제안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러한 자발적인 범죄는 아담의 선천적인 본성 혹은 경향과 구분되는 개별적인 죄의 행위를 가리킨다.

 

죄의 보편성

 

바울은 한 사람의 죄로 인해 세상에 죄가 들어왔으며, 그 죄로 인해 죄의 보편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5:12-19; 고전 15:21, 22). 보편적인 죄는 부패한 성품과 범죄행위를 초래케 한다. 죄가 보편적이라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모든 자에게 정죄의 심판이 내려진다는 것이다(3:18, 36; 요일 5:12, 19). 죄의 형벌인 사망이 개인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범죄하지 않은 자에게도 찾아왔다고 말한다( 5:12-14).

 

죄인이란

 

죄인은 율법의 기본적인 요구 사항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전적으로 결핍하고 있다( 6:4, 5; 22:35-38). 죄인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우선적으로 사랑한다(딤후 3:14). 죄인은 때로는 하나님께 적극적인 원수가 되는 반감을 가지고 있다( 8:7). 죄인의 모든 기능은 무질서하며 부패되어 있다( 4:18). 죄인은 하나님이 만족하게 인정해 줄 수 있는 사상이나 감정이나 행위를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7:18). 죄인은 자신의 인격과 생애를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할 수 있도록 자력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며, 자아와 죄를 더 사랑하는 그의 입장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무력감에 있다. 그러나 영혼의 모든 기능을 상실했거나 자유적 행동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뜻은 아니다.

 

전적타락의 의미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적 타락이란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사람을 기쁘게 할 모든 기질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며, 모든 형태의 죄를 골고루 짓거나 지을 경향성이 있다는 의미도 아니며, 그의 행위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거스르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바울은 어떤 이방인들은 본성으로는 율법의 일을 행한다고 주장한 반면에( 2:14), 어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해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한다(딤후 3:13)고 말했다.

 

범죄의 결과는 육체적인 죽음과 영적인 죽음을 가져왔다( 3:19; 고전 15:22). 모든 신체적 질병은 근본적으로 죄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육체적인 고통도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육체적인 죽음

 

육체적인 죽음은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육체가 땅으로 돌아갈 때 발생하는 것이다( 3:19). 모든 육체는 결국 정해진 기간 안에 죽는다( 90:10). 구약시대에는 에녹과 엘리야만 육체적 죽음을 면할 수 있었으며( 5:24; 왕하 2:11), 신약시대에는 휴거 시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사람들은 육체적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살전 4:16, 17).

 

성경은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죽음은 선고된 하나님의 심판이며 피할 수 없다고 가르친다( 5:12).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형벌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에게는 죽음이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단계이며, 영원한 생명과 상급과 안식에 이르는 과정이다( 1:21; 딤후 4:8; 14:13).

 

성경에 기록된 육체적인 죽음에 대한 표현이 다양하다.

 

(1) 흙으로 돌아간다( 3:19; 34:15; 3:20).

(2) 흙에 눕는다( 7:21; 20:11).

(3) 기운이 끊어진다( 14:10).

(4) 눈을 뜨지 못한다( 14:12).

(5) 잠을 깨지 못한다( 14:12).

(6) 기억함이 없다( 6:5).

(7) 찬양하지 못한다( 115:17).

(8) 적막한 데 내려간다( 115:7).

(9) 호흡이 끊어진다( 146:4; 10:17).

(10) 흙으로 돌아간다( 146:4).

(11) 아무 것도 모른다( 9:5).

(12) 이름이 잊어버린바 된다( 9:5).

(13) 잠을 잔다( 9:24).

 

4. 영적인 죽음

 

영적인 죽음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아담이 죄를 짓는 순간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그 결과 사람은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어 타락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죄와 악을 만들어내는 죄의 본성을 지닌 것을 말한다. 죄가 이미 죄에 대한 형벌이라는 어거스틴의 주장은 의미있는 말이다. 이 의미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본래 가지고 있는 죄악된 상태와 조건은 그 자체로 이미 죄에 대한 형벌의 일부분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죄는 인간을 부패시키는 일종의 영향력이며 인간의 죽음의 일부이기도 하다. 죄로 말미암아 초래된 죽음의 상태에서 인간은 죄책을 짊어지게 된다. 자연인은 어디를 가든지 처벌에 대한 강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다. 양심은 그의 죄책을 상기시켜 주며,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사로잡기도 한다. 영적인 죽음은 죄책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죄의 오염을 의미하기도 한다. 바울은 사람이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말한다( 2:1-5; 2:13). 다시 말하면 사람이 생물적으로는 살아있지만 영적으로는 죽어있는 상태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영적인 죽음에 대한 표현을 살펴보자.

 

(1) 하나님을 싫어하는 마음으로 악한 일들을 행함( 1:28-32)

(2) 영적 도덕적 이해력의 어두운 무지( 4:18; 1:31; 고후 2:14)

(3) 허망한 생각( 6:5, 12; 1:21)

(4) 부끄러운 정욕( 1:26, 27)

(5) 모든 악의( 4:28-31; 5:3-6)

(6) 부패한 마음과 양심( 1:15-16; 딤전 4:2)

 

영적인 죽음은 살아날 수 있으며 살아나야 한다. 그 방법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죽음은 살아날 기회가 없다. 영적인 죽음의 상태에서 육체적인 죽음으로 끝난다면, 영원한 죽음으로 결정된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의미하며, 다시 살아나기에는 불가능하다( 25:41, 10:28; 10:31; 14:11).

 

 

 

연구문제

 

1.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인가?

2. 어떤 하나님의 형상이 당신에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가?

3. 어떤 하나님의 형상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4. 아담은 자발적으로 죄를 지었는가 혹은 강요에 의해 죄를 지었는가?

5. 자발적인 죄와 원죄는 어떻게 다른가?

6. 전적타락은 구원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가?

7. 세 종류의 죽음은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연관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