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는 비결’ - 조용목 목사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립보서 4장 11∼13절)
행복과 불행은 그 사람이 처한 현실적 상황에 관련됩니다. 그러나 동일한 상황이라 하여도 각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이나 불행감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만족감의 차이 때문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행복과 불행이란 만족과 불만족이란 용어로 대체하여도 무방합니다. 불신자와 성도의 차이는 만족을 느끼는 데에서도 구별이 됩니다. 성도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좌우되지 않는 만족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만족의 근원이 한층 더 깊은 곳에, 다른 차원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대체로 어떠한 상황에서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육신의 건강 상태가 양호할 때 만족감을 느낍니다. 손톱 밑에 작은 가시 하나라도 박히게 되면 그 가시는 통증을 일으키게 되고 통증은 만족감을 밀어내어 버립니다. 또 하나의 요소는 새롭고 흥미로운 것을 접할 때입니다. 무미건조, 권태라는 말은 불행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소유함으로써 만족감을 느낍니다. 갓난아이도 손을 뻗어 무엇을 움켜쥐려고 하고 일단 손에 쥔 것은 빼앗기기를 싫어합니다. 사람에게는 성취하려는 욕구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거나 이루는 과정에서 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만족감을 가지게 하는 것 중에는 대화하는 것도 있습니다. 말할 대상이 없으면 숨 막히도록 답답한 생활이 될 것입니다. 건전하고 유익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화 상대자가 있고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가질 때 만족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적당하게 일하는 것과 휴식을 취하는 것에서도 만족을 느낍니다.
만족을 느끼며 사는 것과 행복은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성공해서 만족을 얻으려 하기보다 먼저 만족한 마음으로 사는데 성공해야 합니다. 현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불만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충분히 만족하며 살 수 있는데도 불만을 표시하며 살아가는 것은 삶을 불행으로 이끌 뿐입니다.
성도들이 가지게 되는 만족감의 특징적인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들의 만족은 하나님께로부터 생기는 만족입니다. 자신의 몸이 건강하여 만족하는 성도는 그 만족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되게 해야 합니다. 비록 몸의 모든 부분이 다 건강한 상태가 아니라도 건강한 부분이 많이 있음을 인하여 만족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 때문에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능력에 더 의존하게 되어 도리어 크게 기뻐하고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자신이 무엇을 소유하게 되면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된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갖게 되어 만족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게 되니 또한 만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하게 될 때 얻는 만족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만족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회와 소원과 지혜와 열심과 힘을 공급해 주심으로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특별히 어떤 모험을 하려 하거나 새로운 것을 경험하지 못하여도 매사를 새롭게 여기며 행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고 참된 의미에 결부해서 한 일은 단조롭고 일상적인 일이라도 항상 새롭습니다. 살아가면서 계속 새로운 것만을 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만사를 새롭게 느낄 수 있다면 권태로움이 없게 됩니다. 항상 마음이 새로운 상태가 되도록 성령께 의탁하십시오. 성도는 그가 소유하는 것의 분량과 크기에 관계없이 만족감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산이 적고 결핍하여도 가족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면 박한 음식을 먹어도 만족을 느끼며 살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가지는 만족감의 특징은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질 수 있는 만족감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의 옥중에서 모든 것이 불편하고 부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만족하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리스도 안에서 배운 만족의 비결은 사도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가질 수 있는 비결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미 받은 복과 장차 누릴 복을 헤아려 보면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참된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 살기 때문에 갖는 만족감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만족감을 느끼며 사는 자의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