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CC무엇이 문제인가? 10장 성경불신주의 - 목양신문
WCC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특별계시가 아니며,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며, 더욱이 오류 없는 말씀도 아니다. 성경은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표준이 아니다. 성경은 오랜 역사를 거쳐 내려온 복음 전통(전승)의 산물이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이 아닌 외적인 요소에 있다고 한다.
WCC는 성경을 오류 있는 책들의 묶음이며, 따라서 역사서와 문학서와 동일한 방법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다. 성경은 기독교 신앙지식을 제공하는 문서이고, 성령께서 독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매개체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책이라고 본다.
‘에큐메니칼 성경관’이라고 일컬어지는 WCC 성경관은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성경해석 방법, 신정통주의 성경관, 급진주의 신학 사상을 엮어 짠 것이다. 성경을 구전과 전통(전승)의 산물이라고 보는 것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의 길을 마련한 것이며, 타종교들과 진리찾기의 ‘대화’와 종교다원주의의 이론적 근거이다.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는 ‘전통과 성경’을 둘러싼 ‘권위’의 문제에 대한 팽팽한 차이를 보여왔다. 신앙과 행위의 최종 권위가 성경인가 전통-교황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서 전자는 베드로 교구의 감독좌를 절대 표준으로, 후자는 ‘오직 성경’을 최종적인 권위로 천명한다. 그러나 WCC는 ‘오직 성경’ 원리를 포기하고, 로마감독직의 사도적 계승을 인정해 주었다. 개신교회의 신학적 정박지를 떠났다.
1. 성경의 권위와 영감 WCC의 헌장은 “WCC는 성서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원자로 고백하고, 한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의 영광을 위한 공동의 소명을 함께 성취하고 싶어하는 교회들의 교제이다”라고 한다. “성서를 따라”는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도,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도, 성경의 권위에 대한 서술도 아니다.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기독교 에큐메니칼 단체의 신앙고백문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간단하다. 로마가톨릭교회로 하여금 이와 비슷한 것을 표명하라고 하면 훨씬 더 구체적인 서술을 담은 고백문을 제시할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적 복음주의 기독교는 성경이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말씀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무오한 말씀이며, 신앙과 행위의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표준이라고 믿는다. 성경은 전통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며,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에 있다고 믿는다. 성경의 권위는 성경 자체가 가진 신적 특성에 있다고 본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최종 규범이라고 믿고 고백한다. 신앙, 신앙고백, 신조, 교리, 삶 등 모든 것이 성경의 ‘권위’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한 기독교의 답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역사적 기독교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is)라고 믿는다. 시각장애자가 태양을 볼 수 없어도 태양은 그 자체로 태양이듯이, 성경은 사람의 주관적 체험이나 깨달음이나 하나님과의 만남과 무관하게 그 자체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둘째,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다”(contain)고 본다. 성경이 담고 있는 인류의 보편적인 진리(사랑, 자유, 평등 등)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유대 종교의 저급한 도덕-윤리나, 편협한 종교적 독선 등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본다.
셋째, 신정통주의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become)고 한다. 성경은 인간이 쓴 유오한 책이며, 히브리인 종교의 역사 문서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하나님은 기독교 전통의 산물인 그 책을 매개체로 하여 우리와 만나고 말씀한다. 성경을 수단으로 각자가 하나님과 만남(encounter)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지 않다. 셩경과 계시도 동일하지 않다. “성경은 단지 계시(예수)에 대한 인간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책은 참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적인 ‘증언’ 도구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도구를 사용한다. 그것을 매개체로 삼아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어떤 것이 된다. 갑에게는 성령의 이 부분이 말씀이 되고 을에게는 성경의 저 부분이 말씀이 된다.
넷째, 급진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is not)라고 한다. 성경은 문학서, 역사서이다. 유익한 교훈을 담은 참고서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의한 세력에 맞서 싸우는 실천 그 자체가 신앙의 본문이고, 그 실천 속에서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WCC의 성경관과 성경해석 방법은 자유주의 신학과 일치한다. 권위와 영감과 기능에 관해서는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와 에밀 부룬너의 성경관을 따른다. 성경이 문학서, 역사서라고 하는 것은 급진주의와 자유주의 신학과 일치한다.
한국교회는 신정통주의(바르트주의, 신신학)를 ‘자유주의 신학’에 포함시켜 논의해 왔다.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의 모순을 깨면서 등장했고, 주로 진보계의 교의학 분야에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신정통주의의 결정적인 실수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성경해석 방법을 수용한 것이다. 신정통주의 성경관은 자유주의 신학 놀이터에 터진 폭죽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을 일반 고대 종교 문서와 역사서와 동일한 것으로 바았다. 성경은 고대 히브리인 종교의 진화의 산물이며 사상적, 역사적, 과학적, 지라적, 연대기적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 ‘역사-비평방법’을 도입하여 다른 역사서와 문학서와 동일한 방법으로 해석한다.
자유주의 신학의 성경관과 성경해석방법론을 도입한 신정통주의 성경관은 20세기 전반에 걸쳐 성경의 권위를 크게 위축, 약화시켰다. 교회의 생명력 상실에 영향을 미치고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예일대학교의 구약신학자 차일즈 교수는 20세기 구약신학이 자유\b주의 신학의 ‘역사-비평적 방법’을 하나의 기본으로 받아들인 것은 근본적인 실수였다고 반성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가 아니라 계시(그리스도)에 대한 인간의 증언에 지나지 않는다는 신정통주의(바르트주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개인적 경험은 성경본문과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며, 인간 경험이 ‘본문’이 되고, 따라서 경험이 신학 쟁점들에 대한 사실상의 ‘성경’이 된다. 따져보면 WCC가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것도 주관주의, 상대주의를 고무시키는 신정통주의 성경관과 직결되어 있다.
2. 에큐메니칼 성경관 WCC 성경관은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 여러 교회 대표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종합한 것이다.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데 초점이 있다. WCC는 1960년대에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를 모색하면서 신앙지식의 원천은 ‘성경’과 ‘전통’ 두 가지인가, 아니면 종교개혁자들의 주장처럼 ‘오직 성경’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었다.
WCC는 복음전통이 성경에 선행한다고 한다. 그리고 전통들이 중요하다고 한다. 전통이 성경에 선행하다는 말은 성경이 전통의 산물이라는 뜻이며 전통들이 중요하다는 것은 로마가톨릭교회 전통(전승, 교황의 권위), 루터파의 전통, 개혁파 전통, 영국국교회 전통 등이 모두 중요한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WCC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보배”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의 보배라는 것은 루터파와 신정통주의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말씀의 이분법적 위계, 곧 ‘경전 안의 경전’ 개념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 4:7)라는 구절을 성경관에 연관시킨 것이다. 성경은 질그릇처럼 오류가 많고, 성경 기자의 인간적인 생각이 그 안에 많이 들어 있고, 전통(전승)의 산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말쓰믕 듣게 하는 중요한 도구라는 뜻이다.
WCC의 성경관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급변해왔다. 워드햄대학(1949), 몬트리올(1963), 부리스톨(1967) 문서들을 비교하면 WCC의 신학이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성경을 인간 저술과 책 묶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는 자유주의 신학과 급진주의 사상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WCC는 성경의 권위를 성경 밖에서 찾는다. 성경이 문학성을 가진 문서이며, 교회를 위한 지시을 제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게 하는 매개체이므로 권위가 있다. 성경은 교회를 위한 지식을 제공하는 필수적인 원천이기에, 곧 신앙문서이기에 권위를 지니게 되었다. 성경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 성경의 권위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도구삼아 말씀하는 하나님께 있다. 성경은 부차적인 권위를 가질 뿐이라고 한다.
WCC 에큐메니칼 성경관과 성경해석학은 다양한 개신교회 전통들과 로마가톨릭 교회 전통(교황)을 묶고 타종교들과 일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상황신학, 흑인신학, 해방신학, 여성신학의 연구를 돕고, WCC의 타종교와의 대화위원회의 방향과 신학 내용을 지원했다. ‘살아 있는 신앙’의 경험들을 가진 타종교와 ‘대화’에서 진리를 찾고, 타종교에도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있다는 이단 신학이론의 토대가 되었다.
WCC 성경관은 ‘오직 성경’ 원리에 따르는 개신교회와 일치의 토대에서 벗어났다. WCC에는 “성경이 성경을 해석한다”는 개신교회 성경해석 원리가 설 자리가 없다. 성경이 분명하게 말하는 것조차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복음전도와 진리제시의 의욕과 야성을 앗아가고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결론 : 의심의 성경해석 에큐메니칼 성경관의 핵심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성경은 중요한 책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지 않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도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와 성경은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수단이다. 성령의 인도로 성경은 독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고, 복음이 된다.
(2)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는 수단이다. 그것을 읽는 독자의 실존적 체험이 계시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 에큐메니칼 성경해석이야말로 성경을 계시화 하는 작업이다.
(3) 성경은 무오한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문학서,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오류 있는 인간의 책이다. 상대적인 권위를 가질 뿐이다. 성경은 성령 하나님에 의한 영감된 말씀이 아니다. 영감된 말씀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은 현대인의 삶의 이야기들의 의미를 가늠하게 해 주는 척도인 “영감된 증언”을 담고 있을 뿐이다.
(4) 셩경은 전통(전승)의 산물이다. 성경의 본문들은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의 일부이다. 따라서 진리는 “해석학적 에큐메니칼 수렴”을 거쳐야 하고, 정합성의 해석학과 의심의 해석학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5) 성경의 권위는 성경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그것에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에, 교회의 신앙문서이기에 권위가 있다. 성경은 독자와 하나니므이 말씀과 ‘만남“의 도구라는 부수적인 권위만을 가지고 있다.
(6)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최종적인 객관적 규범이 아니며 표준이 아니다. 성경은 기독신자에게 부과된 신해의 규범이 아니다. 성경은 우리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도 아니며, 신행의 표준도 아니다. 독자의 특별한 경험(체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성경의 기초적인 규범과 시금석이 된다.
(7) 자기의 성경관과 성경해석을 고집하면 다양한 형태로 역사하는 성령의 진리를 짐짓 상실할 수 있다. 기독교 공동체의 통일성과 다양성은 모두 다 성령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다른 교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교회는 다른 교회들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진리를 상실할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8) 성경의 상대적 가치만을 인정할 때 비로소 WCC와 일치할 수 있다. ‘오직 성경’ 원리에 연연하고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거나 성경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것은 세계 교회 일치를 방해한다. WCC의 ‘에큐메니칼 성경관’의 특징들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는 ‘성경불신주의’가 가장 적절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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