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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밭에서 읽는 말씀] 제사장 멜기세덱 왕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26

    “살렘 임금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왔다. 그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창 14:18)아브람(나중에 아브라함)이 소돔에 사는 조카 롯이 전쟁 중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쫓아가 롯을 구해 왔습니다. 멜기세덱이 찾아와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아브람은 자신이 가진 것의 10분의 1을 멜기세덱에게 줍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별처럼 많은 후손과 땅을 주시겠다는 언약을 맺습니다.왕이자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등장은 사뭇 밑도 끝도 없어 신비롭게까지 느껴집니다. 구약성서를 통틀어 이 본문과 이스라엘 왕이 “멜기세덱을 따른 영원한 제사장”(시 110:4, 새번역)이라 하는 장면에만 나옵니다. 신약에는 히브리서 5~7장에서 사도 바울이 왕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만 언급되는 인물입니다.시중에 유통되는 표준 와인 병은 750㎖입니다. 2병들이 매그넘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와이너리들은 가끔 아주 큰 병을 만듭니다. 18세기 프랑스 보르도에서 4병들이(3ℓ)를 여로보암이라 이름한 뒤로 크기에 따라 르호보암 므두셀라 솔로몬 등 별칭을 붙였습니다. 큰 병은 포도주를 오래 보관할 때 숙성 속도가 느려 경매에서도 값을 높이 칩니다. 가장 크고 아주 드문 30ℓ들이는 멜기세덱입니다.멜기세덱의 이름은 히브리어로 정의로운 임금이란 뜻이며 그는 평화(살렘)의 임금이었습니다.박여라 영문에디터 yap@kmib.co.kr

  • [박용미 기자의 Song Story] 유명세 벗고 진정한 예배자로… “한 명이라도 주님께”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26

    이커브미니스트리(Eternal Covenant Worship Ministry)는 1999년 창단된 예배사역팀 디사이플스에서 출발한 단체입니다. 서울 목동제자교회를 기반으로 천관웅 목사가 이끌었던 디사이플스는 목요예배를 통해 수많은 성도와 함께 뜨거운 찬양을 드렸습니다.정신호(50) 목사는 천 목사의 뒤를 이어 2008년부터 디사이플스를 맡았습니다. 3년 뒤 목동제자교회에 위기가 닥치면서 디사이플스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그 당시는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또 훈련의 시간이기도 했다”며 “나도 몰랐던 내 안의 겉멋과 기름기를 벗겨내고 예배자로 다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2018년 이커브미니스트리로 새출발하고 목요예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30대 초반에 최고의 예배 인도자 중 한 명이었던 천 목사의 뒤를 잇게 된 그는 주변의 의심 눈초리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대표곡 ‘주 사랑이 나를 숨 쉬게 해’는 그때 만든 찬양입니다.“당시 천 목사님과 투톱으로 예배 인도를 했던 제가 차기 리더가 돼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당장 내 앞날의 진로가 확실치 않아서 저도 많이 흔들렸던 때였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주님이 아니면 나는 살아갈 수 없다는 고백을 담은 찬양이에요.”“주 사랑이 나를 숨 쉬게 해/ 세상 그 어떤 어려움 속에도/ 주 은혜로 나를 돌보시며/ 세상 끝날까지 지켜주시네…” 가사처럼 그는 하나님만 붙들었고 리더로서도 성공적으로 사역을 해나갔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려워진 후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예배를 드리는 상황에 이르면서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찾게 됐습니다.“내가 사랑하던 교회가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픈 일이었어요. 주변에서는 그만두고 나오라고 했지만 내 편안함을 위해 성도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2년여간 예배를 사수했죠. 인기 예배사역팀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버리고 철저히 낮아지는 시간이었어요.”주차장조차 폐쇄된 후 디사이플스는 교회를 옮겨 다니며 목요예배를 지키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결국 디사이플스 이름마저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이커브미니스트리로 사역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그 길도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왔고 목요예배 장소도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서울 강서구 로뎀교회(이용신 목사)에서 예배를 드린 지 곧 1년이 됩니다.“예배가 7시40분에 시작하는데 예배 시작 때까지 저희 팀만 앉아 있을 때도 있어요. 10~20분이 지나면 조금씩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통 10여명이 같이 예배를 드려요. 제가 소위 유명세를 겪어본 사람이라 이 상황에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었어요. 지금도 그 마음을 내려놓는 훈련 과정인 것 같아요. 예배를 사모하는 진짜배기들과 하나님만 바라보려고 하죠.”이커브미니스트리는 하반기 새 앨범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정 목사는 찬양 사역을 충실히 하는 것은 물론이고 차기 리더십을 키우고 예배자를 훈련하는 일에 더 열심을 내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를 위해 팀원들을 교육하고 또 파송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팀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예배자이자 교회와 가정, 직장에서 모범을 보이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게 목표입니다. 뜨거운 예배를 접하고 복음을 배우면서 강단 위가 아닌 삶의 현장에서도 겸손한 크리스천이 되어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다음세대를 위한 유튜브 사역 등도 확장해나갈 계획이지만 그 이전에 예배의 중심으로 돌아가 성숙한 예배자로 서는 일에 매진하겠습니다.”글·사진=박용미 기자 mee@kmib.co.kr

  • [목양실에서] 충직한 개처럼, 믿을 수 있다면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23

    오늘날 개는 가족의 일원처럼 사랑받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 개는 부정함과 천함의 상징이었습니다. 골리앗이 다윗을 향해 내뱉은 말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삼상 17:43)그런데 예수님께 나아온 한 여인이 스스로를 개에 빗댑니다. 그녀는 가나안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예수님 앞에 부르짖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마 15:22)그러나 놀랍게도 예수님은 한마디도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듣지 못하시는 듯, 보지 못하시는 듯 침묵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침묵의 벽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더욱 간절히 매달립니다. 보다 못한 제자들이 청합니다. “저 여자가 우리 뒤에서 자꾸 소리를 지릅니다. 그만 보내십시오.” 그럼에도 여인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시선조차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녀는 주님께 한 걸음 더 다가섰습니다.여인은 마침내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곡히 청합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런데 돌아온 말씀은 뜻밖이었습니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가져다가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여기서 자녀는 유대인을, 개는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멸시하며 부르던 그 표현이 다름 아닌 주님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누구보다 사람을 깊이 사랑하시고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끌어안으셨던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물론 예수님의 본심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이방인에게 권능을 베푸셨고, 낯선 이들과 고아와 과부의 처지를 늘 자신의 일처럼 여기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주님의 말씀이 낯설다 못해 차갑게 들렸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돌아서도 이상하지 않을 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이 장벽마저 넘어섭니다. “주님,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개들도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개로 취급받으면 어떻습니까. 딸이 살아날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한 모욕이라도 견딜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어머니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거절도 모욕도 자존심도 모두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고백을 풀어 본다면 이런 뜻이었을 것입니다.“주님, 제 딸을 고쳐 주시는 능력과 인자하심은 주님께는 부스러기에 불과합니다. 자녀들의 떡을 빼앗아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은 자녀들에게도 충분하고 동시에 저에게도 충분합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그저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하나입니다.”저는 이 본문을 가장 잘 실천하는 존재가 어쩌면 우리 집 강아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아지가 원하는 것은 저와의 겸상도, 식탁 위의 음식도 아닙니다. 그저 식탁 아래로 떨어지는 작은 한 조각이면 충분합니다. 강아지는 저의 침묵을 이겨냅니다. 무관심도 이겨냅니다. 제가 모른 척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오, 주여, 저도 개처럼만 믿을 수 있다면. 그렇게만 믿을 수 있다면 어떤 시험도 우리를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고난도 능히 넘어설 것이며 우리는 마침내 믿음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는 주님의 축복이 임하고 있었습니다.때로 우리가 개 취급을 받는다 해도 낙심해 돌아서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 자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5월 한 어머니의 기도로부터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여인처럼 주님께 부르짖는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와 차별 없는 사랑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박노훈 목사 신촌성결교회

  • [인 잉글리시] 이런 날씨에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22

    Even though there was a blizzard raging outside, I made it the half-mile to the bakery where I asked the owner for six rolls. “Your wife must like rolls,” he said. “How do you know these are for my wife?” I asked. The owner replied, “Because your mother wouldn’t send you out in weather like this.”(*blizzard: 눈보라, 폭설. *rage: 사납게 날뛰다, 사납게 불어 닥치다. *make it to ~: ~까지 가다. *roll(s): 두루마리, 다발, 명부, 구르기, 롤빵, 롤 카스텔라.)눈보라가 세게 몰아치고 있었지만 난 수백 미터 떨어진 빵집까지 가 롤빵 여섯 개를 주문했다. 주인이 말했다. “부인께서 롤빵을 정말 좋아하시나 봐요.” 나는 물었다. “아니, 아내 줄 빵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주인이 답했다. “어머니라면 이런 날씨에 아들을 내보내셨을 리가 없지요.”어머니의 사랑을 운운하는 빵집 주인의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아내도 어머니처럼 나를 사랑하지만 내리사랑을 하는 어머니와 다르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기 바라고 또 그 사실을 늘 확인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폭설을 뚫고 사 온 빵을 먹는 아내의 행복한 표정은 남편의 기쁨이기도 하다. 빵집 주인은 인생의 진리를 아는 척했지만 사실 고부간 갈등을 조장했을 뿐이다. 그렇게 갈라치기를 하는 거짓 지혜는 늘 조심해야 한다. 사랑은 얄팍한 머리보다 훨씬 깊다.권수경 일원동교회 목사

  • 생명의 주권 인정하는 간절한 기도로 얻은 선물… 딸 아리와 함께 예배하며 엄마의 내면까지 회복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17

    남편과 짧은 연애 후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신혼을 더 즐기다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정작 아이가 갖고 싶다고 생각했을 땐 아이가 바로 생기지 않았습니다. 걱정과 불안한 마음이 커지던 중 친정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외상성 뇌출혈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생명을 주는 분도 하나님이고 거두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깨달음이 강하게 왔습니다. 이때 이후로 생명의 주인인 주님께 새 생명을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됐습니다.아울러 내가 원하는 때 아이를 얻을 수 있다는 계획과 생각도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임신을 위한 기도문도 작성했습니다. 쓰다 보니 A4용지 4장에 달하는 기도문이 완성됐습니다. 매일 밤 남편과 이 기도문으로 전심을 다해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시점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됐고 사랑스러운 딸 아리를 출산했습니다.아리는 볼에 표재성·심재성 혈관종이 있는 혼합형 혈관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먹는 약과 바르는 약, 레이저까지 세 가지 치료를 병행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 문제를 놓고 날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의사 진료와 약물 등 어떠한 치료도 하나의 수단일 뿐 결국 완전한 치료자는 우리를 창조한 하나님이라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아리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건 어린 시절부터 쌓여온 제 내면의 상처가 육아하며 하나씩 튀어나올 때였습니다. 그럴 때마다 ‘난 엄마 자격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리를 사랑하는 만큼 저 또한 존귀한 딸로 여긴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35개월째 가정 보육을 하는 것도 아리를 위해서라고 그간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나를 더 회복시키고 좋은 엄마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훈련의 시간을 허락했다는 걸 압니다.아리를 위해 기도하면서 남편과 저는 매일 아침 가정예배도 드리게 됐습니다. 아리를 생각하다 보니 나라와 가정을 위해 여러 가지 기도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엄마 우리 찬양하자” “엄마 우리 예배하자” “엄마 성경책 읽어줘”라고 먼저 말을 꺼내는 아리를 보며 감사를 느낍니다. 반복되는 육아와 일상이 지루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매일을 무탈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날마다 새로운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김태환 권성희 부부

  • [오늘의 설교]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끝까지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15

    군사전략가들은 ‘방어 전투’ 승리의 으뜸 요건으로 자리를 지키는 것을 꼽습니다. 사상자나 전리품의 양보다, 끝까지 그 자리를 이탈하지 않았느냐가 승패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상식 같지만 결정적 요건으로 강조되는 이유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자리를 지키는 일이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는 불가능할 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이 원리는 교회 사역에도 적용됩니다. 소멸지역의 농촌 목회, 소수 학생을 섬기는 청소년 사역, 출항 한 번에 예배의 자리를 떠나야 하는 섬 목회, 최전방 장병을 위로하는 군종 사역, 임대료를 위해 ‘투 잡’을 뛰는 개척 교회 사역까지. 다른 이의 눈에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나 본질로는 모두 소중한 사역입니다.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그 자리를 성실히 지켰는가입니다. 환호와 박수가 없는 자리일수록 실망과 허탈, 번아웃의 시간이 깊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서 무릎 꿇고 다시 결단하는 그 고독한 시간 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동행하심은 분명 더 세밀하고 깊게 경험되었을 것입니다.그런데 사역의 자리를 끝까지 감당하지 못 하는 일도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물으시는 것은 “네가 ‘다시’ 일어설 수 있겠느냐”입니다. 세상의 평가와 하나님의 평가가 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예수께서 온갖 조롱 속에 십자가를 지시며 고난의 절정에 달하자 안타깝게도 요한 외에는 제자 누구도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부인한 베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셨을 때도, 그 눈길은 책망이 아니라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2)의 마음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을 친히 찾아가신 것도, 책망이 아니라 주님 되심과 부활의 확신을 심어 약해진 믿음을 다시 세우시기 위함이었습니다.갈릴리 호숫가로 찾아오신 주님은 베드로에게 “왜 나를 세 번이나 부인했느냐”고 따져 묻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상처를 회복시키시고, “내 양을 먹이라”(요 21:17)며 사명을 다시 맡기셨습니다.사역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것은 분명 칭찬받을 일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감당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해도, 그 일로만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과정에서 겪은 상처와 아픔까지 감싸 주시고, 다시 부르시며 위로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내미시는 손을 ‘다시’ 붙잡는 믿음의 용기입니다.우리의 삶은 ‘우여(迂餘)’와 ‘곡절(曲折)’의 여정입니다. 넘어질 수 있고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럴수록 다시 일어서서 주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한다면, 과거의 ‘넘어짐’은 오히려 더 단단한 걸음으로 우리를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도다”(딤후 4:7~8)라고 고백합니다. 한 번의 넘어짐도 없었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넘어졌을 때 책망 대신 손 내미시는 주님을 붙잡는 믿음의 용기를 냈다는 고백일 것입니다. 그렇게 묵묵히 그 발걸음으로 끝까지 달려갈 길을 마친 후, “잘했다, 애썼다, 수고했어”라며 안아 주시는 주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주종화 목사 (은혜의열매교회)◇은혜의열매교회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2지구에 있습니다. 성도의 삶이 새로워지는 은혜를 경험하고 나누며 ‘함께 교회를 세워 가는 기쁨을 누리는 교회’입니다.

  • [가정예배 365-5월 16일] 이름으로 기억되는 신앙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14

    찬송 :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490장(통542)신앙고백 : 사도신경본문 : 느헤미야 7장 5~73절말씀 : 여러분들은 인생을 살아가며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합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주로 돈이나 명예, 혹은 사람을 남기고 싶어 합니다. 누구나 기억되는 인생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조금 낯설게 다가옵니다. 성벽 재건이 끝난 감동적인 장면 이후에 긴 이름의 명단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의미 없이 보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기억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람을 기억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우리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무엇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를 따지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보십니다. 누가 그 자리에 있었는지, 누가 맡겨진 일을 끝까지 감당했는지를 보십니다. 느헤미야가 사람들을 계수한 것은 단순한 행정 처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이름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신앙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하나님께 기억된 인생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왕도 아니고 영웅도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맡겨진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신앙은 거창한 일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화려함이 아니라 충성을 보십니다. 우리는 자주 비교하며 낙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분량을 주시고 그 안에서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라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자리를 보고 계시며 기억하십니다. 사람들은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이 이름들은 사람들의 기억에는 희미해졌을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느헤미야는 성벽을 완성한 후 더 중요한 일을 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입니다. 공동체는 건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우리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세워질 때 교회 공동체는 건강해집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남기를 원합니까.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인생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이 땅에서 사라지지만 하나님 앞에 남는 것은 믿음으로 살아낸 삶입니다. 하나님은 결과보다 과정을 보십니다. 얼마나 버텼는지, 얼마나 견뎠는지, 얼마나 포기하지 않았는지를 보십니다.그래서 마지막 날 하나님은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오늘도 주어진 자리에서 충성하십시오. 하나님이 아시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그 인생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기도 : 주님, 사람에게 인정받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억되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도 충성하게 하시고 맡겨진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는 믿음을 주옵소서. 우리 가족 모두의 이름과 삶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는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주기도문박정훈 목사(그한교회)

  •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된 성경말씀] 하나님·이웃 사랑으로 시어머니 길 따라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08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나, 하나님께 이끌리어’. 시어머니이신 김옥라 박사의 자서전 제목이다. 보통학교(지금의 초등학교)만 졸업해도 신여성이라 불리던 일제강점기 강원도 두메산골 간성에서 태어난 어머님은 한국전쟁 중 걸스카우트를 재건하고 한국인 최초로 감리교여선교회 세계회장으로 피선되셨다. 그리고 1986년 각당복지재단을 설립해 우리 사회에 자원봉사 정신을 심고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던 죽음을 공론화하며 웰다잉 교육의 길을 여셨다. 어머님은 30년 가까이 온 힘을 다해 키우셨던 재단을 12년 전 막내며느리인 내게 맡기셨다.처음에는 이 귀한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고 싶다는 책임감으로 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이 일이 참으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나를 붙든다. 재단 사역은 자원봉사를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후회 없는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돕는 ‘흩어지는 교회’의 사명과 맞닿아 있다. 매일 아침 직원들과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모든 봉사의 현장에 함께하시고 지혜와 능력을 더해주시어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그 안에서 사명을 감당할 힘을 얻는다.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재단에 참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같은 소명을 품고 최선을 다하는 동역자들, 지식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는 전문가들, 함께 손잡는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있다. 무엇보다 아무 대가 없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시는 자원봉사자들이야말로 이 사역의 참된 손과 발이다. 위기 청소년을 어머니 같은 사랑으로 돌보는 상담자들, 호스피스 환자의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봉사자들, 죽음 교육의 길을 개척해온 강사들, 상실의 아픔을 위로하는 애도 상담사들, 그리고 기도와 재정으로 함께하는 후원자들. 이 한 분 한 분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자 기도의 응답이다.평범한 주부였던 내 삶은 재단을 맡은 이후 크게 달라졌다. 가족들에게 집중돼 있던 관심이 이웃과 사회로 넓어졌다. 버겁고 감당하기 어려울 때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깊이 하나님을 의지하게 됐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생각지 못한 곳에서 길이 열리고 작은 섬김이 선한 열매로 이어지는 것을 보며 감사가 염려를 이기는 삶을 배워가고 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푯대를 붙잡고 염려 대신 기도와 감사로 살아가고자 한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 박사 △서울신학대 특임교수 △ADEC(미국 죽음 교육 및 상담협회) 공인 죽음학 전문가

  • [오늘의 QT] 우리 영혼을 살리는 섭리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07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잠 18:21)The tongue has the power of life and death, and those who love it will eat its fruit.(Proverbs 18:21)잠언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말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영혼의 상태를 드러내는 통로입니다. 그러나 말은 인위적인 훈련으로 바뀌지 않으며 반드시 마음의 중심이 변화될 때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말을 고치기 전에 먼저 마음을 다루십니다.자기 소욕을 따르는 사람은 공동체에서 갈라지고 참 지혜를 배척합니다. 고집을 부리고 쉽게 오해하며 편애하고 소문을 퍼뜨리는 모습은 모두 자기중심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공동체에 상처를 남기며 파괴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한쪽 말만 듣지 말고 반드시 상대의 말까지 들으라고 가르칩니다.말은 관계를 세우기도 무너뜨리기도 하기에 분별이 필요합니다. 기도 제목과 허물은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많은 친구보다 참된 친구 몇 명이 더 중요합니다.자기중심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처럼 자신을 내어줄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사용해 다른 이들의 영혼을 살리십니다.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 [겨자씨] 감꽃
    by 국민일보 on 2026-05-15 at 18:06

    ‘화무십일홍’이라는 말마따나 꽃은 원래 잠깐 피었다가 진다. 그 잠깐을 연이어 집중하다 보니 주위가 온통 새파랗게 변한 줄 몰랐다. 아까시 꽃향기가 지천으로 퍼지는 사이에 일찍 피었던 매화 산수유 벚꽃 앵두는 벌써 초록빛 열매를 맺었다. 이 작은 열매들은 아직 이파리와 비슷한 초록색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남들이 보든 말든 부지런히 열매를 맺은 식물의 성실함이 대견하고 부럽다.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5월에는 꽃의 여왕 장미가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초록 열매들처럼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꽃들도 등장한다. 이런 꽃들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 향기도 없다. 감꽃이 대표적이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는 감꽃을 먹었다고 들었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감꽃을 얼마나 먹어야 배고픔이 사라졌을까.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가을이면 가지마다 주먹만 한 주홍빛 열매를 가득히 맺을 것이다.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까치밥으로 남을 귀한 감이 되겠지. 나도 그런 열매가 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신 분이 말씀하셨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마 7:17)정혜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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