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킵과 요약의 시대, 누가 우리의 생각을 이끌고 있는가?on 2026-03-27 at 21:56
누가 우리 생각을 다스리는가? 속도의 시대, 더 천천히 말씀 앞 요약의 시대, 더 깊이 본문으로 자동화 시대, 더 깨어 분별하라 말씀 돌아가면, 새롭게 하실 것 빠른 답보다 말씀 앞 무릎 꿇길 오늘 우리는 전체 이야기를 듣기보다, 편집된 결론을 더 좋아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긴 글보다 요약문을 찾고, 긴 설명보다 짧은 영상을 선호합니다. 물론 요약은 이해를 돕는 유익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요약이 아니라, 요약에 길들여진 인간입니다. 원문을 읽고, 뜻을 헤아리고, 숙고한 뒤 판단하기보다, 먼저 정리된 답을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생각을 멈추는 습관이 우리 안에 깊이 스며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생활 방식의 변화가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의 사고 질서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읽는 수고를 줄이고, 이해의 과정을 생략하고, 분별의 책임을 외부 도구에 넘겨버리는 삶은 우리의 지적 체력만 약화시키지 않습니다. 신앙의 차원에서는 영적 분별까지 무디게 만듭니다. 생각하지 않는 습관은 결국 믿음도 얕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 흐름의 중심에서 인공지능은 매우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I는 방대한 자료를 순식간에 정리하고, 핵심을 추출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형식으로 문장을 재구성합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참으로 유익한 도구입니다. 시간을 절약해 주고, 수고를 덜어 주고, 복잡한 정보를 손쉽게 다루게 해 줍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의 행동이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분석되고, 마음의 욕망마저 측정 가능한 반응으로 바뀌며, 우리의 선택도 보이지 않는 설계 안에서 유도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존귀한 인격체로 보기보다, 계산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는 시선입니다. 그리고 인간을 숫자와 반응으로 다루는 질서는 오늘도 조용히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AI가 주는 효율과 편의 뒤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효율성은 유용한 도구적 가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효율성 그 자체가 선은 아닙니다. 악도 얼마든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자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책임지는 인격적 행위는 중요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기준이 되려는 자율성은 교만과 불순종과 반역의 죄라고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덴에서 인간이 넘어졌던 자리도 바로 그 자리였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욕망, 하나님 없이 판단하려 했던 교만, 이것이 죄의 뿌리였습니다. 이제 교회는 분명한 방향을 정해야 합니다. 교회는 편리한 답을 빠르게 소비하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진리를 깊이 읽고, 오래 묵상하고, 함께 분별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AI가 요약해 준 문장, AI가 제시한 결론, AI가 만들어 낸 그럴듯한 설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말씀 앞에서 그것들을 시험하고 검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는 교회는 결국 진리를 잃어버린 교회가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AI 이전 시대보다 더 깊이 말씀을 알아야 하고, 더 단단히 믿음 위에 서야 하며, 더 엄격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의 기준으로 참과 거짓을 밝혀내려면 여전히 시간과 수고가 들고, 기도와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노력을 게으름 때문에 생략한다면, 결국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가공된 결론이 될 것입니다. 그때 AI가 만든 문장은 단지 편리한 문장이 아니라, 거짓 교훈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싸움은 기술 사용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싸움은 누가 우리의 사고를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싸움입니다. 속도의 시대일수록 더 천천히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요약의 시대일수록 더 깊이 본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동화의 시대일수록 더 깨어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질서는 편리함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말씀으로 돌아가려는 거룩한 결단과 끝까지 진리를 붙들려는 영적 전쟁 속에서만 지켜집니다. 교회가 그 싸움에서 물러서면, 세상은 우리의 생각을 대신 정리해 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말씀으로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빠른 답이 아닙니다. 더 깊은 분별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요약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말씀 앞에 무릎 꿇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교회가 취해야 할 하나님 중심의 질서를 지키는 거룩한 길입니다. 박순형 목사 웨이크신학원 교수 ‘AI 시대 과학과 성경’ 강의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서기 극동방송 칼럼. 국민일보 오늘의 QT 연재 (주)아시아경제산업연구소 대표이사 이학박사(Ph.D.)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M.Div) 필리아교회 담임
- 몰타에서 우연히 마주친 ‘사도 바울의 신앙 사상’ 강연 포스터on 2026-03-27 at 21:55
유럽 최고 활화산 에트나 보여 출발지 카타니아, 관광객 많아 작은 도시 포잘로 택시도 없어 시내 걷다 우연히 포스터 발견 사도 바울 신앙사상 강연 예고 몰타 배시간 때문에 듣진 못해 “우리가 구원을 얻은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사도행전 28장 1절)”. 지난 회에 이야기한 바와 같이, 필자는 멜리데(몰타)를 방문할 때 시실리 섬 최남단에 있는 포잘로(Pozzallo) 항구에서 고속 페리선을 타고 갔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실리 동부 해안에 있는 항구도시 카타니아(Catania)에서 페리선이 카타니아와 몰타 사이를 일주일에 서너 번씩 운항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카타니아에서 배를 타려고 승선표를 구입하기 위해 선사 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러나 막상 가보니 카타니아에서는 운항을 하지 않고, 같은 회사의 페리선이 포잘로에서만 몰타 사이를 운항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포잘로-몰타 행 승선표를 구입하였다. 카타니아는 국제공항이 있을 정도로 큰 도시로서 고대 로마 시대 유적이 시내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로마 콜로세움을 방문할 때 지하 시설(맹수를 가두어 놓았던)은 지상에서만 볼 수 있는데, (경기장 표면이 뚫려 있으므로) 카타니아에 있는 원형경기장에는 지하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지상과 지하 사이에는 지붕(지하에서 볼 때)이 있으므로, 어두운 굴 속을 들어가듯 원형경기장 지하로 들어가서야 볼 수 있었다. 물론 로마 콜로세움처럼 상부 구조물이 크거나 잘 보존된 상태는 아니지만, 지하는 더 잘 보존되어 있다. 또 카타니아에서는 높이 약 3,400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활화산인 에트나(Etna) 산이 멀리 보인다. 산 중턱에 등반하려는 사람들은 주로 카타니아에서 출발하므로, 항공편을 통해 유럽에서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것 같다. 카타니아에서 수라구사(시라쿠사·Siracusa)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수라구사에서 포잘로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사도 바울이 몰타에서 배를 타고 이탈리아 본토로 가던 중 들린 수라구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바울이 몰타를 떠나 로마로 가는 과정에 대해 설명할 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려 한다. 수라구사 기차역은 항구에서 내륙으로 수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시외버스 터미널도 있다. 탑승한 완행열차는 천천히 달리는데, 철로 양옆에는 밀을 심은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다. 수라구사를 떠난 지 1시간 15분 만에 기차는 포잘로 기차역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교실 한 개 크기인 역 건물을 보니 포잘로는 작은 도시로 짐작된다. 역시 생각대로다. 작은 도시이므로 택시도 없어 보이는데, 역에서 항구까지는 제법 먼 거리이다. 다행히 자가용으로 택시 영업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차를 타고 항구까지 갔다. 몰타행 선박은 밤 9시 30분 출항하므로, 6시간을 항구에서 기다리기 지루해 천천히 걸어가 시내를 둘러보았다. 화물 적재함이 0.5톤도 채 안 되는 조그맣다 못해 귀여워 보이는 짐차에 과일을 갖다놓고 파는 사람도 있고, 그런 크기의 차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장사꾼도 있다. 특이한 것은 3톤 정도 되는 화물 트럭에 대형 냉장고를 설치하고 이동식 정육점으로 만들어 소고기, 돼지고기 등을 파는 차량도 보인 것이다. 차량 주위에 아주머니들이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보니 가격이 싼 것 같다. 시내는 작고 깨끗하며, 긴 모래 해안은 해수욕장이다. 아직 해수욕 시즌이 아니라서 그런지 해수욕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해안가에 있는 빵집에 들어가 보니, 우리나라 빵보다 큰 빵들이 많이 보인다. 고기를 다져 넣은 만두 같은 빵 몇 개를 종류별로 샀는데 맛이 좋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빵값보다 훨씬 저렴한 것에 놀랐다. 일자리가 부족해서 그런지, 대낮인데도 시내에 젊은이들이 여러 명씩 모여 앉아 잡담을 하는데 실업자들 같아 보인다. 그래도 이탈리아인들의 천성인 쾌활성 때문인지, 지나가는 필자에게 손을 흔들며 웃기도 하고 시내를 안내해 줄 테니 몇 푼 달라고 익살스럽게 말한다. 시내를 걷다 우연히 건물 벽에 ‘사도 바울의 신앙 사상’에 대한 강연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6월 초 토요일부터 그 다음주 수요일까지 매일 강연한다는 내용이었다. 필자는 이탈리아어를 잘 모르지만 스페인어는 어느 정도 하므로(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는 거의 비슷하다), 프로그램 내용을 읽어보니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하는 강연내용이 상당히 알차다. 시간이 되면 필자도 한번 참석해 보고 싶었으나, 몰타(멜리데)로 가는 배 시간에 맞추기 위해 아쉽게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비록 작은 시골 도시이지만, 이렇게 사도 바울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랍고 기뻤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8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 , 등 26권
- CGN, 개국 21주년 맞아 ‘다큐 맛집’ 문 열어on 2026-03-27 at 21:52
글로벌 선교 미디어 CGN이 오는 3월 29일 개국 21주년을 맞아, 첫 마음을 기억하며 선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특집다큐 2편을 준비했다. 먼저 3월 29일(주일) 오전 10시 30분 방송되는 ‘소년이 어른이 되어(부제: MK의 고백, 10년 후)’는 MK(Missionary Kid, 선교사 자녀)들 이야기를 담았다. 10년 전, 선교사 자녀의 고민을 솔직하게 담아 화제가 됐었던 CGN 다큐 ‘MK의 고백’ 후속작이다. 당시 다큐에 출연했던 MK들은 대부분 10대 사춘기 소년 소녀였다. 이번 특집 다큐에서는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 그들 모습을 추적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만큼 섭외부터 쉽지 않았지만, 삶의 변화와 성숙기를 거친 이들의 과정을 담백하게 담아냈다. 당시 선교사가 되고 싶다고 외쳤지만 자신만의 삶을 개척한 이, 교회를 떠난 이, 부모를 따라 선교지에 헌신하는 이도 있다. 또 늘 이방인 같았던 한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다니며 자리 잡아 살아가고 있는 이, 같은 MK로써 아픔을 공감하며 격려를 나누는 일에 열심인 이들도 있다. 이번 다큐 ‘소년이 어른이 되어’는 MK들의 거주 문제, 정체성 혼란을 거치며 성인이 된 이들의 고민, 한국에서 군대를 나오거나 직장을 다니며 국내에서 잘 자리잡은 사례, 교회를 떠난 적도 있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부모님이 헌신했던 땅으로 돌아가 선교사의 길을 걸어가는 모습 등 다양한 MK들의 성장 모습을 담았다. 오는 4월 5일(주일) 오전 10시 30분 방송되는 ‘땅끝의 증인들: 바톤터치 끝나지 않는 선교의 여정’은 아프리카 차드에서 선교하는 양승훈 선교사 부부의 이야기를 담았다. 양승훈 선교사 부부가 생후 3개월 된 딸을 안고 강경 무슬림파가 많은 척박한 땅에 들어가 약 28년간 사역하며 제2의 고향이 된 아프리카 차드. 차드는 아프리카에서도 두드러지게 언어, 인종, 종교가 다양한 국가다. 북부는 이슬람교를 믿는 주민이 대부분이고, 남부는 프랑스 식민시대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 가톨릭을 믿는 주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다. 양 선교사는 예수님 때문에 복음을 전하러 갔지만, 오히려 현지인 동역자들에게 더 큰 사랑과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일례로 내전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현지 동역자 조엘 목사가 밤새 총알을 뚫고 찾아와 격려하며 도움을 준 적도 있다. 이제 양 선교사 부부는 사역을 현지인에게 이양하는 과정도 천천히 밟고 있다. 또 어엿한 숙녀로 성장해 최근 결혼한 딸 양혜민 전도사는 목사인 남편과 함께 선교사로 헌신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번 다큐에서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역사하심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차드에서 양 선교사 부부가 겪은 일생의 은혜를 나눈다. CGN은 ‘선교 미디어 CGN 어디서나 모두에게’라는 비전으로 해외 선교지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및 다음 세대 재부흥을 위해 미디어 선교의 선구자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21년간 6개 해외지사(미주, 일본,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프랑스)를 세우고, 각 지역 특성에 맞춘 복음 콘텐츠 현지화와 선교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있다. 5년 전 국내 기독교 최초로 OTT 플랫폼 ‘퐁당’을 만들어 국내외 유익한 콘텐츠를 무료로 서비스하며, AI 기술을 활용한 실시간 번역과 라이브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또 상업광고를 하지 않는 유일한 기독 미디어이기도 하다. 선교를 중심으로 한 복음 전파의 순수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듯 CGN의 역사는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을 계속해서 멈추지 않았고, 현재도 AI 시대의 글로벌 선교 전략 구축을 위해 힘찬 도전 중이다. 3월 27일 서울 용산구 서빙고 온누리교회에서는 CGN 직원 및 후원자, 관계자 등 약 230명이 모인 가운데 개국 21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이재훈 CGN 이사장은 “21년 전 하용조 목사님이 온 땅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종하겠다고 했던 다짐이 첫 걸음이 되어 21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다”며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AI시대에 복음 전도의 기회에 초점을 맞춰 CGN의 사명을 다시 새롭게 하면서 선교적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귀한 역사를 이루실 줄 믿는다”는 격려사를 전했다. 전진국 CGN 대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님들의 기도와 후원으로 오늘을 맞았다”며 “앞으로 CGN은 이 시대의 문화적 언어와 양식을 잘 읽고, 선교의 시공간적 지경을 넓히는 ‘세대(世代)와 세계(世界)를 잇는 글로벌 선교 미디어’로 거듭날 것”이라고 방향성을 밝혔다.
- 2026 봄 앗쌀람 이슬람 바로 알기 정기 세미나on 2026-03-27 at 21:49
2026 봄 앗쌀람 이슬람 바로 알기 정기 세미나가 오는 4월 4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서울 노원구 한국성서대 복음관 301호에서 총 9차례 진행된다. 교육비는 무료이며, 참여 대상은 이슬람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 누구나, 이슬람 선교 관심자, 목회자와 평신도 등이다. 다음은 세미나 프로그램. -4월 4일(토) 개강예배 1강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레이먼드 김 목사, 앗쌀람) -4월 11일(토) 2강 이슬람의 태동과 무함마드(현한나 교수, 디아스포라 이슬람연구소) -4월 18일(토) 3강 이슬람의 종교적 삶: 6신 5행(김수완 교수, 한국외대) -4월 25일(토) 4강 이슬람의 신관과 구원 이해(김영남 박사, 아신대) -5월 2일(토) 5강 이슬람의 경전 꾸란(권지윤 박사, 한국이슬람연구소) -5월 9일(토) 6강 이슬람의 예수 이해(박미애 박사, 온누리교회) -5월 16일(토) 7강 이슬람 사회와 샤리아 법(박별 교수, MPM) -5월 23일(토) 8강 중동 정세 이해와 이슬람권 선교(김종일 교수, 아신대) -5월 30일(토) 9강 무슬림 선교의 실제(Ana Jung, 앗쌀람) 무슬림선교회 앗쌀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품고 정기 세미나와 이슬람 문화 탐방을 통해 이슬람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고, 현지 아랍 문화를 경험하며, 무슬림 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을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감당하는 기독교 선교단체이다. 이와 함께 2026 여름 문화탐방으로 6월 29일부터 7월 11일까지 중동 오만과 아랍에미리트, 터키 등을 다녀올 예정이다. 위 정기세미나를 참석해야 참여 가능하다. 문의: al-salam@daum.net (아랍문화연구회 앗쌀람)
- 한동대, ‘수상한 체육대회’ 열고 수익금 전액 지역에 환원on 2026-03-27 at 21:49
한동대 창업팀 하우스더웨더, 수익금 전액 아동복지시설 기부 한동대학교(총장 박성진) 재학생 창업팀이 만든 포항 로컬 문화콘텐츠 기업 '하우스더웨더'가 지난 3월 21일 포항 양덕 한마음체육관에서 지역 청년 60명과 함께 '수상한 체육대회'를 개최하고, 행사 수익금 55만 원 전액을 지역 아동복지시설 선린애육원에 기부했다. '수상한 체육대회'는 ‘우리가 수없이 상상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대회 이름에 담긴 ‘수상한’은 ‘수없이 상상했던’의 줄임말인 동시에, 승패보다 팀워크를 통해 함께 ‘수상(受賞)하자’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경쟁 대신 협력을 중심에 둔 이 행사는 참가자들이 학창 시절의 순수한 열정과 공동체적 유대감을 다시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됐다. 하우스더웨더는 참가비 수입 가운데 운영비를 제외한 순수익 전액을 지역 내 소외된 아동을 위한 복지시설에 기부함으로써, 청년들의 즐거운 참여가 실질적인 사회적 가치로 이어지는 선순환 모델을 보여줬다. 2025년 환동해지역혁신원 소셜벤처 경진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한 하우스더웨더는 지금까지 총 4회의 포항시 행사를 개최하며 누적 참여 인원 500명을 넘어섰다. 정적이고 활기 없다는 로컬의 선입견을 깨고 청년들이 열광할 수 있는 역동적인 콘텐츠를 꾸준히 선보이며, 지역에서 청년이 자리잡을 수 있는 문화적 토대를 만들어가고 있다. 주영준 하우스더웨더 대표는 “포항이 청년들에게 진정한 놀이터가 될 수 있도록 독창적인 로컬 콘텐츠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최우수상 수상 기업으로서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실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소셜벤처 사업을 기획한 심규진 환동해지역혁신원 부원장은 “소셜벤처의 혁신은 결국 내 이웃과 우리 지역에서 시작된다”며 “올해 프로그램을 통해 환동해 지역 전체가 새로운 혁신을 시도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우스더웨더는 앞으로도 청년들이 포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꾸준히 기획하며 “청년이 포항에 남아야 할 이유는 결국 이 도시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재밌는 경험과 함께하는 사람들에 있다”는 믿음을 콘텐츠로 증명해 나갈 계획이다. 한동대는 앞으로도 하우스더웨더와 같이 지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학생 창업팀을 지속적으로 발굴·지원하며, 대학의 혁신 역량이 캠퍼스를 넘어 지역 공동체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창업 생태계 조성에 힘써나갈 계획이다.
- [오늘의 설교] 그리스도를 본받음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12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는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우상의 제물이었습니다.(고전 8:1) 우상의 제물은 이방 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에 놓인 제물 자체가 아닙니다. 이런 제사에 참여하여 제물을 먹는 것은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니 우상숭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의 제물은 시장이나 불신자의 집 등 일상에서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음행은 피하라고 하지만 고린도에서 우상의 제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우상의 제물은 교회 안에서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도 하나님이 주신 식물로 여겨 먹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음식을 우상의 제물로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지식 있는 자가 우상의 집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약한 자가 담력을 얻어 같이 먹게 된다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한다”고 엄중히 경고합니다.바울은 어떤 권리나 자유가 생기더라도 필요하면 기꺼이 절제했습니다.(고전 8:13) 또한 사도로서 사례비를 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었지만 고린도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 권리를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삶이라고 고백합니다.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이처럼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라면 손해이며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놀랍습니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경건하고 능력 있는 소수만이 감당하는 특별한 사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오래전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처음부터 장의자가 없던 그 교회가 새 예배당 입당을 앞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바닥에 방석을 놓자는 쪽과 놓아서는 안 된다는 쪽이 맞섰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방석에 앉을 수 없다는 주장과 예배에 집중하려면 편안한 방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했습니다. 양측 모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어느 한쪽이 자기 권리를 절제하고 양보했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이 되었을까요.가진 것이 적을 때는 권리와 자유를 절제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내려놓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우리나라는 19세기 말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 20세기 초 대부흥의 물결 속에서 큰 혜택을 누렸습니다. 6·25전쟁 직후 세계 최빈국이었으나 개발도상국을 거쳐 2021년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만장일치로 선진국 지위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할 우리에게 사도 바울의 말씀은 울림을 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배종열 목사(해길사역연구원장)◇개신대학원대 명예교수 배종열 목사가 원장으로 섬기는 해길사역연구원은 교회를 세우는 세움 사역, 사회와 연결하는 이음 사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나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개척을 준비하거나 개척 교회 사역자들에게 교회 개척·목회 사역의 원리와 전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가정예배 365-3월 28일]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11
찬송 :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516장(통265)신앙고백 : 사도신경본문 : 마태복음 5장 13~16절말씀 : 예수님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향해 너희는 빛이고 소금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선언입니다. 설득이나 설명 역시 아닙니다. 소금이란 이것이고 빛이란 저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빛이다” “소금이다”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의 선언은 누군가의 질문에서 비롯한 대답입니다. 그 선언을 근거로 추측해본다면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체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면 됩니까.’마태 공동체는 자신을 늘 확인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들에게 배교자 취급을 당해야 했으니까요. 그들은 같은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을 어긴 이단으로, 유대를 통치하던 로마에게는 없는 이처럼 취급당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소수였기 때문입니다. 안으로는 박해를 받고 바깥으로는 배제를 당했습니다. 그러니 자신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잘못된 땅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자신들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닌지 물어야 했습니다. 유대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지’를 물어야 했고 로마라는 제국에 대해서는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집단이 아닐까’를 물어야 했습니다.예수님의 선언은 내면에 숨은 질문과 의심, 회의와 비관에 대한 대답입니다. 다시 말해 ‘소금이며 빛’이라는 선언에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에서 탈락한 게 아니라는 믿음과 확신, 선언이 들어있던 것이죠. 우리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보존하는 정통’이라는 위로와 격려 등이 저 선언 속에 들어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류에 섞이지 못해 가난하고 쫓겨나서 애통하고, 의를 위해 핍박받아도 복이 있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은 윤리적인 교훈이 아니라 상처받은 공동체가 함께 고백하는 정체성 선언인 것이죠.그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은 드러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니, 숨을 수 없고 숨길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 상처받은 공동체를 산 위의 마을이라 부릅니다. ‘쫓겨난 게 아닐까’ ‘실패한 게 아닐까’라고 스스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공동체를 산 위에 있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너희는 율법을 어겼으니 이단이며 율법 파괴자가 아니냐’ 하며 비난하는 이들에게 교회는 말합니다. 교회는 율법을 부수기 위해 나타난 공동체가 아니라고요. 오히려 우리는 율법을 완수하기를 바란다고요. 이 말은 어떤 바리새인처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목록을 더 잘 만들어 지키겠다는 게 아닙니다. 말씀을 달리 이해하겠다는 뜻입니다. 목록을 만들어 지키느냐 마느냐를 의로움으로 여기지 않고 마음과 태도와 생각과 언어와 삶을 더 나은 의로 여기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목록 지키기보다 더 나은 의입니다.그리스도파는 법을 더 잘 준수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안식일을 더 잘 지키고 손을 더 잘 씻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안식일 법을 어겨 안식을 지키고 정결법을 어겨 정결함을 선언합니다. 율법이 내쫓은 사람들을 하나님 안으로 불러옵니다. 그렇게 교회는 도드라집니다. 그리스도파는 도드라진 탓에 드러나고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예수가 나타나고 나타내듯 우리도 나타납니다.기도 : 하나님, 우리 가정이 더 나은 의를 좇아 살게 해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주기도문박만희 목사(함께걷는교회)
- 하나님 멀리하고 제힘으로만 하려 했던 육아… 하나님 마음 깨닫고 말씀과 믿음 안에서 키워내겠다 다짐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10
결혼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저희에게 소중한 새 생명 ‘대복이’(태명)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왕복 4시간 넘는 통학길을 오가며 배 속의 아기가 안전하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열 달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대복이를 품에 안았습니다.평소 아이들을 워낙 좋아했기에 둘째, 셋째도 거뜬히 낳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막상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달랐습니다. 육아는 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고된 인내의 과정이었습니다. 신생아를 돌보며 제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그 과정에서 제가 가장 먼저 놓아버린 것은 경건 생활이었습니다. 아기 곁에서 아침마다 찬양하고 말씀을 읽으며 기도하는 ‘작은 예배’를 드리긴 했지만 그것은 스스로 위안을 얻기 위한 형식적인 모습에 가까웠습니다. 하나님은 제 마음 중심이 아닌 저 멀리 밀려나 계셨습니다.아기가 신생아 시기를 막 벗어났을 무렵이었습니다. 평소와 달리 분수처럼 토를 하고 기침과 열까지 이어졌고 저는 급히 소아과를 찾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보셔야 합니다”고 말했습니다.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며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놀라면 눈물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20분이 마치 몇 시간처럼 느껴졌고 떨리는 손으로 운전대를 붙잡은 채 제 인생에서 가장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았습니다.운전하는 내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왜 이런 상황을 허락하셨나요?” 그 질문 끝에 비로소 제 모습이 보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힘으로만 육아하려 했고 모든 시선을 아기에게만 두고 하나님을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운전대를 붙잡고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제가 주님을 멀리 떠나 있었습니다. 제발 저희 아기를 지켜주세요.”놀랍게도 처음에는 자리가 없다던 병원에서 제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반드시 지켜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모든 검사 결과, 다행히 단순한 감기로 판명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곧장 답을 주시기보다 그 시간을 허락하신 것이었습니다.육아하며 저는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얼마나 애타게 바라보셨을지, 그리고 제가 아기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함께하심을 느낍니다. 육아는 여전히 고되고 힘들지만 그 수고를 뛰어넘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 부부는 수시로 말씀과 믿음 안에서 이 아이를 키워내겠다고 다짐합니다. 이 딸이 하나님의 온전한 자녀로 자라나도록 저희 부부가 먼저 믿음 위에 굳건히 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김건환 김문영 부부
- [인 잉글리시] 빌려드려도 괜찮아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09
When Joseph from Arimathea arrived home one Friday night many years ago, he told his wife that he had given their tomb to someone to use. She got upset and said to him. “How could you do that? After all the time and money you spent building it… It was just finished and what are we going to use now for ourselves?” Joseph just said. “Don’t worry. It’s only for the weekend.”(*get upset: 화를 내다. *how could~: 어떻게 감히 *it is for the weekend: 주말을 위한 것. 주말용. 주말 동안은 during the weekend.)아주 오래전 어느 금요일 저녁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집에 가 부인에게 자기들의 무덤을 빌려줬다고 말했다. 부인은 화가 나 말했다. “아니 왜 그랬어요? 그거 만든다고 시간이랑 돈이 얼마나 들었는데… 이제 막 완성해 놓고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디 묻혀요?” 요셉은 가볍게 대답했다. “걱정하지 말아요. 주말에만 쓸 거래.”요셉은 예수의 제자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요 19:38) 지위와 재산이 있어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인계받아 자기의 새 무덤에 안치했다.(마 27:57~60) 메시아가 죽어 부자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그렇게 이루어졌다.(사 53:9) 그렇지만 주님은 무덤을 주말에만 잠깐 사용하셨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 주말에만 쓰실 거라는 요셉의 한 마디는 놀라운 신앙고백이다.권수경 일원동교회 목사
- [송길원 목사의 고백록] 늦은 도움은 도움이 아니다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08
모세 시절 성소 건립 현장은 활기찼다. 기술자들이 모세에게 달려와 외쳤다. “백성이 가져온 예물이 하나님 명령을 수행하고도 남을 만큼 넉넉합니다!” 모세는 즉시 진중에 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 예물을 가져오지 마십시오!” 백성은 기꺼이 발길을 멈췄다. 물자는 해야 할 일을 다 하고도 남을 정도로 풍족했다.(출 36:5~7) 차고 넘쳤다.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이 장면은 나의 오랜 로망이자 최애(最愛) 구절이 되었다. 헌신이 명령을 앞지른다. 마음이 물자를 압도한다. 그 풍요의 순간을 얼마나 갈망했던가. 마지막 문장은 심장 박동수를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대개 반대편에 있다. 현장에 서면 늘 두 단어와 맞닥뜨린다. ‘기부’와 ‘거부’다. 기부는 달달하다. 거부는 시리다 못해 쓰다. 기부는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거부는 비릿하다. 속이 뒤틀린다. 기부는 삶에 의욕을 주지만 거부는 자존심을 저격한다. 비영리단체 활동가라면 누구나 두 얼굴을 마주하고 산다.거절은 한 가지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대놓고 거절하면 차라리 낫다. “기도하겠습니다.” 100% 거절이다. 이 언어를 이해하는 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더 힘든 것은 미루고 흐리고 피하는 거절이다. 좋은 일이라 치켜세우면서도 정작 약속한 날이 오면 연락이 끊긴다. 곧 보자고 손을 잡아 놓고 끝내 답을 주지 않는다. 될 듯한 기대를 오래 품게 하다가 마지막 순간 돌아선다. “이번에는 어렵겠습니다.” 문제는 거절 그 자체보다 과정에 있다. 사람을 끝없이 기다리게 한다. 기약도 없다. 희망 고문이다. 끝내 무너져 내린다. 처참하다.비영리 기구 수장에게 갑을 관계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사정하고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이 사명만큼이나 일상이 된다. 오늘날의 일만도 아니다. 과거 거인들도 매한가지였다. 영어사전 편찬의 거목 새뮤얼 존슨은 9년에 걸친 고투 끝에 대업을 마쳤다. ‘나 홀로’ 이룬 성과였다. 일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뒤늦게 후원자를 자처하며 나타난 이가 있었다. 체스터필드 경이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댈 때는 외면했다 땅에 오른 뒤에야 노를 저어주겠다는 꼴이었다.“나리, 후원자란 물에 빠져 발버둥 치는 사람을 태연히 바라보다가 그가 땅에 도달한 뒤에야 도와주겠다고 나서 오히려 방해되는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 노고에 대한 관심이 조금만 더 일찍, 조금만 더 친절하게 왔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관심은 제가 개의치 않을 때까지 지체되었고, 필요가 없어질 때까지 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혼자라 알릴 수 없을 때까지, 제가 알려져 그것을 원치 않을 때까지 말입니다.”편지는 통렬했다. 문학사에서 가장 통쾌한 후원 거절이다. 늦은 도움은 도움이 아니다. 서운함이 오죽했을까. 사도 바울조차 서운한 감정을 뒤끝으로 풀어낸다.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를 향해 ‘그 행위대로 갚으실 것’이라 경고했다.(딤후 4:14~15) ‘몹시 반대’했다는 대목에서 울분이 뚝뚝 묻어난다.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로스(파울로스·바울) 형에게 슬쩍 농담을 건넨다. “형, 몰랐어? 소주가 맥주에게 조용히 속삭이더라고. ‘막걸리 그 친구, 은근히 뒤끝 있더라.’ 형도 이제는 ‘무(無)서운’ 사람이 되어야 해.”인문학자 이수태가 말했다. “세상에서 만나는 누구든 나에게 시사적이다. 격을 높여 말한다면, 다 계시를 주고 있다고 해도 좋다. 어쩌면 ‘절대 통하지 않는 사람’은 더 크고, 더 절대적인 계시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사방이 벽으로 막힐 때가 비로소 하늘을 볼 때다. 땅길이 끊어진 곳에서 하늘길이 시작된다. 땅 위 길은 막혔어도 하늘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기부(寄付)와 거부(拒否) 사이, 나는 끝없는 거부(拒否)를 통해 거부(巨富)가 된다. 뭉크의 작품 ‘절규’(사진)가 2012년 미술 경매 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 요즘 시세로 약 2500억원이다.실제 그의 삶이 그랬다. 네 살에 엄마를, 열한 살에 누나를 폐결핵으로 잃었다. 아버지는 불안정했다. 그는 늘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휘둥그레 뜬 눈, 찢어질 듯 벌린 입, 목이 터져라 튀어 나오는 비명. 뒤에 선 친구들의 무심함이 대비되면서 그 절규는 더 가슴을 쥐어짠다. “끼야악!!!!!”주님은 내가 질렀던 비명을 어떻게 셈하고 계실까. ‘이른 비와 늦은 비’(신 11:14)를 적절히 내려 주시는 하나님을 떠올린다. 가슴 속에 숨겨 두었던 지옥 하나 꺼내어 주님께 내어놓는다. “늦은 도움도 도움이다.” 비로소 나도 서운함 없는 ‘무서운’ 사람이 된다.송길원 하이패밀리 대표·동서대 석좌교수
- [인 더 바이블] 어린 나귀(colt)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07
고대 그리스어 ‘폴로스’를 번역한 ‘어린 나귀’는 신약성서에서 우리가 종려주일에 읽는 말씀(마 21:1~11, 막 11:1~10, 눅 19:28~38, 요 12:12~19)에만 나옵니다. 폴로스는 어린 것 즉, 어린아이, 짐승 새끼, 어린나무를 뜻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귀(오노스)가 아니라 어린 나귀를 가리켜 이르신 뜻은 “아직까지 어떤 사람도 탄 적이 없는 나귀”(막 11:2, 이하 새한글), “여태껏 어떤 사람도 탄 적이 없는 나귀”(눅 19:30)라는 설명에서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는 어린 나귀를 언급한 스가랴서 예언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슥 9:9)영어 성경은 폴로스를 콜트(colt·수컷 망아지, 어린 선수 팀, 콜트식 자동 권총)로 번역했습니다. 콜트는 고대 영어에서 덜 자란 돼지를 뜻하는 단어에서 비롯됐습니다.“딸 시온에게 말해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온유하여 나귀를 타고 계신다. 어린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제자들이 가서 예수님이 지시하신 대로 했다. 그들은 나귀와 어린 나귀를 데려와서 그 위에 겉옷을 펴서 얹어 놓았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 위에 올라앉으셨다. 매우 큰 무리가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쭉 펼쳐 놓았다. 다른 사람들은 나뭇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 쭉 펼쳐 놓았다.”(마 21:5~8)어린 나귀를 타고 평화로 오시는 그분 앞길에 입고 있는 겉옷을 벗어 깔아 놓습니다.박여라 영문에디터 yap@kmib.co.kr
- [기고] 십자가의 고난을 넘어, 진정한 자유의 부활로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06
우리는 지금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사순절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사건을 넘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자유를 선포하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자유는 값없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보혈 위에 우리가 서 있듯, 오늘날의 신앙의 자유와 민주주의 또한 선진들의 피와 눈물로 세워졌습니다. 고난 없는 영광이 없듯, 희생 없는 자유도 없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창조주께서 인간 영혼 깊은 곳에 심어놓으신 신성한 주권의 발현입니다.자유민주주의의 의미자유민주주의는 단순한 정치 제도가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o Dei)대로 창조됐다는 성경적 진리에 기초한 인격 존중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하나님은 인간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거룩한 자기결정권을 주셨습니다.이러한 이해는 사회 제도 속에서도 구현돼야 합니다. 삼권분립과 법치주의, 시장경제는 타락하기 쉬운 권력을 견제하고 하나님이 주신 양심과 창의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주인이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올바로 작동하며, 복음의 자유를 지키는 힘 또한 이 체제에서 비롯됩니다.시대의 파수꾼부활을 기다리는 이 시기 우리 사회는 마치 무덤을 막은 돌처럼 거짓 사상들이 진리를 가리려 합니다. 특히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간을 물질로만 보는 유물론적 세계관과 공산주의 사조는 신앙의 본질을 훼손하는 어두운 흐름입니다.이럴 때 교회는 시대의 파수꾼이 돼야 합니다. 파수꾼은 모두가 잠든 밤에도 깨어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권력의 압제나 세속적 유행에 굴복하지 말고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 독립된 신앙으로 서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민주주의는 참된 자유가 아닙니다. 변치 않는 말씀 위에 굳게 서서 나라의 근간을 지켜야 합니다.부활의 소망부활절은 사망 권세를 이기신 승리의 선언입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억압을 해방으로 바꾸는 역전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자유는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과 질서 안에서 피어나는 책임 있는 자유입니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이웃을 섬기기 위해 권리를 유보하는 낮아짐의 영성이 있을 때 자유민주주의도 더욱 견고해질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유는 거저 유지되는 열매가 아닙니다. 깨어 있는 양심으로 지켜내야 할 신앙의 보루입니다. 나치의 폭정 앞에 침묵을 거부했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는 “악을 보고도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며, 하나님은 말하지 않은 죄를 물으신다”고 경고했습니다.지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흐리며 교회의 침묵을 기회 삼아 하나님의 질서를 부정하려 합니다. 이제는 방관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골방의 기도에 머물지 않고 말씀을 삶의 걸음으로 증명하는 ‘살아있는 행함’으로 이어져야 합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서 말씀과 행함으로 나아갈 때 진리를 대적하는 이념의 장막은 물러갈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열방 앞에 진리의 빛을 비추는 제사장 나라로 우뚝 서기를 소망하며, 부활의 소망을 품고 이 거룩한 길을 함께 걸어갑시다.박조준 목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국제교회논평회 설립자)
- 십자가서 멀어지고 죽음은 잊고… 갈 길 잃은 중세의 초상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05
우리는 대체로 정면을 바라본다. 곧게 서 있는 것, 질서 있게 놓인 것, 이해 가능한 것들 속에서 안정을 느낀다. 그래서 세계가 잘 작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시대가 정면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엔 이미 균열이 진행되고 있는 시대가 있다. 겉은 견고해 보이지만 중심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시간. 16세기가 그랬다. 지식은 확장됐고 세계는 넓어졌다. 천문학은 하늘을 계산했고 지리학은 바다를 건넜으며 예술은 인간을 새로운 중심에 세웠다.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모든 성취는 인간을 오히려 더 흔들리게 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기준은 점점 흐려졌고 교회는 여전히 권위를 말했지만 더이상 신뢰를 주지 못했다. 정치는 신앙을 이용했고 신앙은 그 안에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정작 중심은 사라지고 있었다.이 보이지 않는 균열을 한 장의 그림으로 붙잡아 낸 화가가 있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의 ‘대사들(The Ambassadors)’은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정치 종교 지성의 충돌 한가운데서 변화하는 시대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화려한 녹색 비단 커튼을 배경으로 2단 선반 탁자 양쪽에 두 남자가 서 있다. 왼쪽은 영국 주재 프랑스 대사 댕트빌로 홀바인에게 이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한 당사자다. 오른쪽은 댕트빌의 친구이자 프랑스 왕의 밀서를 들고 찾아온 조르주 셀브이다.헨리 8세의 결혼 문제는 유럽 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사건이었다. 헨리 8세는 왕비 캐서린과의 이혼을 원했지만 교황은 이를 거부했다. 이 거절은 단순한 교회법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왕권과 교황권, 국가와 신앙의 충돌이었다. 결국 왕은 로마와 결별하고 앤 불린과 결혼한다. 그리고 영국 교회를 스스로의 손에 두는 길을 택한다.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는 이 균열 앞에서 침묵할 수 없었다.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는 영국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도, 그렇다고 교황을 정면으로 거스를 수도 없는 미묘한 위치에 있었다. 이때 조르주 셀브가 밀서를 들고 댕트빌을 찾아온다. 밀서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밝혀진 게 없지만, 그림에 등장하는 상징으로 보아 헨리 8세의 결혼을 두고 가톨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영국과의 외교를 유지함과 동시에 종교개혁의 확산에 대한 우려 등이 담긴 것으로 추정된다.댕트빌은 영국 궁정 화가였던 홀바인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한다. 흰 담비 털로 만들어진 망토는 그의 신분을 말해 주고, 탁자 위에 가볍게 얹힌 손에서는 당당함이 느껴진다. 홀바인은 댕트빌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칼집 한구석에 그의 나이를 의미하는 ‘29’라는 숫자를 새겼다. 오른쪽 조르주 셀브는 가톨릭 주교로 20대에 종교계 거물로 성장한 프랑스 교단의 실세다. 셀브의 오른팔 밑에 깔린 책에 적힌 숫자 ‘25’로 나이를 확인할 수 있다.홀바인의 치밀하게 계산된 알레고리 묘사는 가운데 탁자에 놓인 갖가지 물건에서 절정을 이룬다. 2층 선반에는 천구의가 놓여 있고 그 곁에는 원통형 휴대용 해시계와 황동으로 만든 사분의, 그리고 또 다른 해시계들이 진열돼 있다. 모두 하늘을 관찰하기 위한 기구들이다. 아래쪽에는 지구본과 수학책, 류트, 찬송가 같은 지상을 위한 물건들이 있다. 류트 앞에는 비텐베르크에서 출간된 마르틴 루터의 찬송가가 펼쳐져 있다. 끊어진 류트 줄은 종교적으로 화합을 이루지 못한 시대상을 보여준다. 펼쳐진 수학책은 나눗셈 페이지에 멈춰 있다. 분열된 시대를 묘사한다.이 그림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그림 중앙 아래 해골과 왼쪽 커튼 상단 뒤 숨겨져 있는 십자가이다. 이 둘은 그림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이면서 동시에 이 시대를 꿰뚫는 신학적 선언이다. 왼쪽 위에 무심히 드리워진 커튼 뒤에 작게 드러난 십자가가 있다. 그것은 중심에 있지 않다. 의도적으로 가려져 있다. 이 배치는 단순한 구도가 아니다. 십자가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더이상 세계의 중심에 놓여 있지 않은 16세기의 영적 상태를 드러낸다. 교회는 여전히 십자가를 말하지만, 십자가는 권력과 제도, 그리고 인간의 계산 뒤로 밀려나 있다.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가려졌다.화면 중앙 아래 길게 늘어진 형태로 놓인 해골은 정면에서는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시선을 비틀어 옆에서 바라보면 그것은 또렷한 해골로 드러난다. 이 기법은 애너모포시스(anamorphosis·왜상)이다. 홀바인은 원근법의 극단적 형태를 이용해 그림 속에 해골을 숨겼다. 당시 해골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삶을 성찰하기 위해 사용한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나타내는 오브제이다. 죽음은 그 자리에 분명히 있지만 올바른 시선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왜곡된 이미지는 인간의 시선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 서 있고 같은 시대를 살며 같은 문제를 공유하지만 서로 다른 시선 위에 있다. 시간과 우주를 측량하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현실은 정면에서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이 작품은 보여준다. 인간은 천구의로 하늘을 계산하고 해시계로 시간을 측정하며 지식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지만 정작 가장 분명한 사실은 보지 못한다.우리는 여전히 보이는 질서 속에서 안정을 찾고 익숙한 시선으로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그러나 중심이 흔들린 시대는 정면으로는 읽히지 않는다. 시선을 바꾸지 않으면 본질은 끝내 드러나지 않고, 분열의 한가운데서도 우리는 무엇을 붙들어야 할지 놓치기 쉽다. 십자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 삶의 중심에서 밀려났을 뿐이며, 삶을 결정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무엇을 중심에 두는가이다.라영환 총신대 교수
- [오늘의 QT] 아버지의 뜻대로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04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Going a little farther, he fell with his face to the ground and prayed, “My Father, if it is possible, may this cup be taken from me. Yet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Matthew 26:39)겟세마네 동산의 밤 예수님은 홀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습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고통을 피하고 싶은 인간적인 마음의 정직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는 내 뜻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과정입니다.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편안함을 택하고 고통을 피하려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우리 삶에도 겟세마네의 순간이 있습니다. 믿음은 고통을 피하려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자라갑니다. 참된 평안은 문제가 사라지는 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무는 데 있습니다.김영복 교수(웨이크신학원)
- [겨자씨] 나이 많은 사람부터by 국민일보 on 2026-03-27 at 18:03
요한복음 8장에 등장하는 ‘간음하다 잡혀 온 여자’는 거의 사골국에 가까운 에피소드이다. 기독교인 아닌 사람도 한번은 들어보았음 직하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간음의 현장을 뒤진다. 대낮에 남들이 다 보는 데서 부정을 저지르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찾았을까. 그 노력도 대단하다. 남자는 튀고 여자만 잡혀 왔다. 남자는 놓아주고 여자만 데려왔을 수도 있다.고발의 현장에서 예수님은 별말씀이 없으시다. 땅바닥에 뭐라 뭐라 쓰셨다는데 성경이 말해주지 않으니 알 수는 없다. 율법대로라면 돌로 쳐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신다. 그리고 다시 땅에 뭔가를 끄적이신다.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둘씩 물러간다. 이 문장을 잘못 해석하면 너도나도 우리 모두 죄인이라는, 물타기 면죄부가 된다. 제발 그러지 말기를.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이 많은 사람부터’라는 구절이 도드라졌다. 전에는 나이가 많으니 죄도 많아서 먼저 물러났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나이가 많아서 생긴 통찰 때문에 먼저 자신의 죄를 인식한 거였다. 제대로 나이 들고 있는 어르신들께 희망이 있다.정혜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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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QT] 아버지의 뜻대로](https://image.kmib.co.kr/online_image/2026/0328/2026032721300647152_1774614606_177450020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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