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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WCC 무엇이 문제인가? 맺음말 : 찬반의 길목에서 - 목양신문2012-07-0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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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무엇이 문제인가? 맺음말 : 찬반의 길목에서 - 목양신문

 

1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찬반 논의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격돌하고 있다. 사물을 보는 서로 다른 세계관과 인식방법과 전제가 충돌한다. 한 편은 상대주의 진리관으로 사물을 본다. 진리는 불명확하고 다원적이고 가변적이라고 보는 인식방법이다. 성경은 오류 있는 인간의 책 묶음이며 그 안에서 계시를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도구라고 믿는다. 다른 한 편은 객관주의 진리관으로 세상을 본다. 진리는 명료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불변하다고 보는 인식방법이다. 성경을 특별계시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현대 사상계와 신학계를 지배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을 해체하는 사상 흐름이다. 회의주의, 상대주의, 주관주의 특성을 보이면서 다민족, 다종교, 다문화 이슈들에 대한 담론을 다룬다. 장 프랑스와 리요타르는 다원주의와 다양성과 차이와 타자성을 강조한다. 미셀 푸코는 다원성, 다양성, 상대성을 강조하면서 미시 담론을 주장한다. 자크 데리다는 의미와 기치의 보편화, 절대화, 통일성, 전체와를 거부하고 다양화와 상대화의 분산을 주장한다. 해체와 흐트러짐과 분절과 산포를 주장한다. 여러 담론들과 인문학 안의 여러 담론들의 상혼 간의 차연의 놀이를 강조한다.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잇는 다리는 없다고 본다.

 

상대주의 세계관과 진리관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보면 각 종교의 진리와 문화의 이데올로기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며,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특수한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것들의 개별성과 특수성을 인정해 주고 상호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주의 신학, 자유주의 신학, WCC 에큐메니칼 신학을 통제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근거한 상대주의 진리관 또는 인식방법이다. WCC “일치를 통한 오늘날의 선교와 전도”(2000)가 이 점을 지적한다.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 개념을 거부하고 기독교의 복음과 그것보다 먼저 주어진 복음을 거론한다. 성경이 진리를 고정불변의 실체로 보는 1세기 지중해 연안의 세계관, 진리관을 반영한다고 본다.

 

WCC는 개신교회가 무의미한 것으로,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여겨온 로마가톨릭교회 전승(전통)을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묵인해 준다. 개신교회가 신앙의 유일한 규범으로 여겨 온 성경, 규정된 규범이 아닌 규정하는 규범을 신앙의 유일한 최종적인 표준으로 여기지 않는다. WCC는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귀를 기울이는 개신교회의 오직 성경원리보다 회원교회들과 로마가톨릭교회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우선적인 것으로 여기는 오직 의견수렴전통을 따른다.

 

역사적 기독교는 상대주의 진리관, 포스트모더니즘, 자유주의 신학, 의견수렴주의, 총화주의, 통합주의,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로 무장한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항한다. 성경이 특별계시이며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신앙을 유일의 무기로 삼아 항거한다. 골리앗 앞에 선 다윗과 같다. “천하에 예수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고 믿는다. 성경이 그렇게 말하기 때문이며, 성령 하나님이 믿게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성경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특별계시이면, 역사적 기독교 신앙은 골리앗의 골통에 일격을 가한 다윗의 야무진 돌팔매 돌이 될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복음주의자들은 어리석은 광신자에 지나지 않는다.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관이다.

 

2

WCC 에큐메니칼 신학을 따라 선교와 전도에 매진해 온 주류 교회들은 한결같이 퇴락하고 생명력을 상실하고 있다. 선교학자 자끄 마티는 세계선교 50주년 기념대회에서 1952년 빌링겐선교대회가 제시한 하나님의 선교가 세속화와 세속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신교신학이었고, 이 선교원리를 따르는 미국과 유럽의 주류 교회들의 선교 아젠다에서 복음전도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복음전도가 사라졌다는 것은 교회의 설교 강단에서 십자가 구원의 신비와 전통적 기독론과 구원론의 메시지가 선포되지 않는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한 말일세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쓰였네라고 하는 구원 진리의 송영이 없다는 말이다.

 

WCC는 세속적인 의미의 하나님의 나라와 그것의 확장을 의미하는 인간화, 해방투쟁, 세상사에 전력하지만, 진정으로 십자가의 도리와 이신칭의의 진리를 설교하도록 하는지, 그러한 설교를 하지 않는 교회가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반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교회 밖에서도 특별 구원역사를 수행하고 있고, 그 구원은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지며, 따라서 꼭 기독교 신앙만을 가져야 할 당위성이 없다면,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교회생활을 할 사람들이 있겠는가?

 

미국 역사신학자 존 리이스 교수는 자신이 속한 미합중국장로교회(PCUSA)의 위기에 대한 연구서를 저술했다. 이 교회가 예수 그리스께서 제자들에게 질문하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나?”에 신약성경처럼 분명하게 답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한 고백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적 교리를 경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배제한 신학교육이 재앙을 불러왔다고 진단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몬트리트 시는 미합중국장로교 역사자료도서관이 있는 곳이다. 호남과 대전 지역에서 봉사하던 옛 미국남장로교회 은퇴 선교사들과 교역자들이 많이 거주한다. 빌리 그래함 목사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곳의 유일한 장로교회인 몬트리트장로교회의 절대다수 신자들은 최근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미합중국장로교회를 탈퇴하여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미국복음장로교단(EPC)에 가입했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정통주의-자유주의 성경관이 문제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증언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고, 인간의 개인적 경험이 성경본문과 동일한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동성연애자를 목사로 안수하고, 낙태권리를 인정한다. 이 교단의 여성목회자프로그램이 여성동성애자들에게 1999년 여성신앙상을 수여했다. 셋째, 사회정의 사역에 전념하면서 은전 하나도 복음전도에 사용하지 않는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넷째, 이 교단을 포함한 미국의 주료 교단들, 에큐메니칼 신학을 지향하는 교회들은 약 40년 후 편안히 죽을 것이 예측되기 때문이다.

 

미합중국장로교회 제219차 총회는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밝히는 사람의 안수를 허락하지 않는 규례조항을 헌법에서 삭제한다는 의안을 373323으로 통과시켰다. 샌프란시스코 노회는 레즈비언 리사 라지스의 목사 안수를 허락했다. 라지스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헌신해야 할 대상은 그리스도이지 성경이 아니라고 말했다.

 

위 주장은 WCC와 미합중국장로교회가 다같이 따르는 신정통주의(바르트주의) 셩경관의 결과이다. 성경이 계시가 아니며,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증거에 지나지 않으며, 안간의 경험, 체험을 성경본문과 동등한 자리에 두며, 사실상 인간 경험을 신학쟁점들에 대한 성경으로 간주한다.

 

유럽의 주류 교회들의 상황은 미국보다 더 심각하다. 리차드 울리는 영국감리교회가 생명력을 상실한 원인을 교회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왜 교회에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대답을 주지 못한 탓이라고 말한다. 급속한 쇠퇴 원인은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한 결과로 신학적 정체성을 잃었으며 기독교 신앙을 가져야 할 분명하고 확실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독교의 복음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다.

 

영국감리교회의 중심 화두는 에큐메니칼다원주의이다. 교회의 최대의 관심사는 글로벌 사회에서, 복합적인 종교, 문화 배경에서 어떻게 다른 종교와 다른 문화와 함께 어울려서 평화롭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복음전도의 핵심은 타종교와의 대화이고, 기독교와 이웃 종교의 대화에서 진리를 찾는 것이다.

 

영국감리교회가 말하는 복음전도대화가 성사되려면 기독교가 참 종교라는 고유한 메시지를 포기해야 한다 에큐메니칼 운동과 다원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대화에서 기독교가 배타적이거나 유별난 주장을 하지 않아야 한다. 전제 없는 대화속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 진리는 타종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어떤 것이라고 본다.

 

영국감리교회가 겪고 있는 변화와 신학적 흐름은 영국국교회(성공회), 톡일의 루터파교회,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그리고 한국에 복음을 전해 준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회들이 겪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기독교의 텃받이던 이들 나라들의 교회들은 황폐와 되어 최대의 선교 대상지로 바뀌었다. 교회들은 생명력을 잃었고, 강력하게 파고드는 이슬람에 서서히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거미줄 쳐진 썰렁한 폐광 같은 유럽의 거대한 교회당들의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내려지고 서서히 초승달 모양의 이슬람 상징물이 매달리고 있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에 가담해 온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유럽 여러 나라의 주류 교회들이 생명을 상실하고 퇴락하는 것은 WCC의 특징인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 태도 때문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자유주의 신학이 WCC의 가맹교회들을 황폐화했다. 그러한 교회들은 응당 자유주의자들을 그 교회의 대표로 WCC에 파송했다. 그 결과로 WCC의 신학은 점차 극단적인 현대판 자유주의 신학,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진리상대주의, 종교혼합주의, 사회구원지상주의, 개종전도금지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가시적 교회 일치주의 신앙고백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로 발전했다.

 

WCC의 사회참여 활동,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의 봉사는 기독교인의 기본 과제이다. 그러나 이 단체가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생명을 잃게 만든다면 그 선행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성경의 중심 메시지인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옮게 여김을 받게 되며 하나님과 화목하는 진리 선포가 없는 선교가 무슨 가치를 지니는가? 한국교회가 WCC에 가담하면 미합중국장로교회와 영국감리교회와 기타 유럽의 주류 교회들과 같은 결과를 초래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3

WCC가 이 책이 제시한 10가지 특질들을 포기하고 역사적 기독교, 성경적인 복음적 신앙으로 회기하고 상대주의 진리관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과 오직 성경의 원리에 굳게 설 의사가 있는가? 그렇다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가 WCC에 적극 가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개 전투를 하는 것과 같은 개신교회의 현 상태는 성경적인 에큐메니칼 운동을 요구한다. 세계선교와 복음전도와 공동의 대사회적 과제를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WCC의 지난 반 세기의 신학의 변질과 그 배후에 자리 잡은 상대주의 인식론 패러다임의 강력한 통제력은 이 단체가 역사적 기독교, 성경적 신학으로 회귀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국의 WCC 회원교회들에게 그 단체를 탈퇴하라고 권하고 싶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황폐해지고 생명력을 상실한 미래의 한국교회를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신학과 신앙을 이원화하고, 교회 지도자들이 신도들에게 자신의 신학 노선과 그 정체를 진실하게 밝히지 않는 것은 정직한 모습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WCC의 신학과 활동과 정체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것도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209129, 한국의 몇 개신 교단 총회장들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과 총무는 교회일치 활동의 일환으로 바티칸의 로마가톨릭교회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찾아가 알현했다. “로마에서는 로마의 풍습을 따르라고 한다. 한국개신교회의 알현자들이 로마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교권반지에 입을 맞추고, “아빠라고 말한 것은 아닐까? 로마가톨릭교회와 하나가 되고자 바티칸을 찾아 간 한국 개신교단의 총회장들의 지도를 받는 기독신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그 날 교황청 일치촉진평의회 담당자 발터 카스퍼 추기경에게 “오는 2013년 한국에서 열리는 WCC 제10차 총회에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스퍼는 “한국에서 열리는 WCC 총회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화답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원교회들과 한국천주교는 여러 해전부터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의 교회 일치기도회를 해오고 있다.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오후 7시, 위 협의회 회원교회 대표자들과 신자들과 로마가톨릭교회 성직자, 수도사, 평신도 등 800여 명은 한국천주교 부산교구 중앙주교좌성당에서 교회 일치기도회를 가졌다.

 

로마가톨릭교회는 개신교인들의 ‘돌아옴’ 또는 ‘귀정’(歸正)만이 교회 일치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고, 교리체계상 변함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러한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기도회를 하는 개신교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한국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가맹한 동시에 보수계 교회연합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도 가맹한 두 교단이 있다. 복음적 신앙과 자유주의 신학의 국경선을 넘나드는 이러한 태도는 한국교회의 진정한 일치, 신앙고백적 하나 됨과 신앙노선 이해와 성경적 교회 건설에 혼란을 준다. 세계교회협의회와 그 한국지부 격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회원교회로 가입하고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밀접한 학문 교류를 가지는 것은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무서운 세력에 성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때 미국을 휩쓸었던 무디부흥운동의 실패를 연상시킨다.

 

미국교회가 오늘날의 생명력 상실의 결과를 가져온 신학적 좌경화 문제로 한참 갈등을 겪고 있던 1930년대에, 미국부흥운동의 주역을 맡은 드와이트 무디는 기업행태로 영혼을 낚고 있었다. 죄, 구원, 중생을 강조했다. 무디는 교회연합운동, 교파통합운동, 기독교문화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유주의 신학 추종자들과 손을 잡았고, 교회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학사조에는 무관심했다. 복음적인 선교단체를 만들고, 주일학교운동, 주일성수운동, 금주운동도 펼쳤다.

 

무디는 자유주의 신학이나 성경고등비평학의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자유주의자들이 이사야서를 제1이사야서, 제2이사야서로 구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사람의 이사야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마당에 두 명의 이사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구출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교회나 신학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무디는 부흥운동자들과 오순절주의자들의 일반적인 특징을 드러냈다. 성령의 역사가 모든 것을 극복하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유주의 신학과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계심을 갖지 않았다.

 

교회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학사조에 무감각하고 성령의 역사가 자유주의 신학의 유해성을 극복할 것이라고 본 무디의 판단은 옳지 않았다. 부흥운동 중심의 복음주의자들이 미국과 세계의 복음화와 연합일치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교회의 분열과 쇠퇴의 씨앗을 광범위 하게 심겨지고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에 무감각한 부흥운동은 결국 그 이유 때문에 자멸의 길로 들어섰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독자적인 단체이면서도 WCC의 한국지부 격 역할을 한다. 이 두 단체는 동일한 로고를 사용한다. 동일한 신학이념을 추구한다. 동일한 성격의 선교 활동을 한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는 WCC 관련 자료들을 싣고 있다. “WCC 제10차 총회”와 “WCC 제10차 총회 준비상황”이라는 항목도 두고 있다. 유유상종(類類相從),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 구원 유일성 신앙과 개신교회의 ‘오직 성경’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한 WCC의 신학노선을 지향한다는 것이 아닌가?

 

WCC 에큐메니칼 신학은 한 하나님, 한 성령, 한 그리스도 안에서 선물로 받은 ‘주어진 일치’와 하나 됨을 방해한다. ‘오직 성경’ 원리를 포기하고 종교다원주의를 공식 표방하고 또 로마가톨릭교회와 일치를 추구하는 것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과 개신교회의 정박지를 버린 것이다. 그러한 에큐메니칼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이 진리 안에서 주어진 한국교회의 영적, 신앙고백적 ‘하나 됨’을 유지하는 길이 아닐까?


미국의 어느 모라비안교회는 2005년 WCC에 재정지원을 중당하기로 했다. WCC가 비기독교 신앙을 인정하고, 모호하고도 상반된 내용의 문서들을 가지고 있고, 기독교 공동체를 벗어나 타 종교와 다양한 문화 전통을 수용하는 ‘폭넓은 에큐메니즘’과 ‘거대 에큐메니즘’을 거론하고, 지나치게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거나 집착하고, 종교다원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바아르선언문’(1990)을 채택했고, 복음전도에 대한 적대적인 에큐메니즘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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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C 제10차 총회(2013, 부산)와 관련한 어느 학술모임에서 보수계 장로교회 신학교의 모 교수는 “WCC는 설령 다소 교리적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가볍게 포기해서는 안 될 가치 이쓴ㄴ 기독교 단체이다. ...WCC에 들어가서 그것의 강조점과 심지어 신학적 분위기를 장악하고... 세계 최대의 기독교 단체인 WCC의 신학과 사업의 방향을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밖에서 반대 말고 들어가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성경적인 방향으로 회구시키자는 것이다.

 

WCC 회원 가운데는 복음적인 교회들이 없지 않다. 그들은 WCC의 신학 흐름을 성경적이고 정통적인 방향으로 이동시키지 못했다. 피사의 사탑처럼 로마가톨릭주의와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다원주의로 기울어져도, 역사적 기독교, 개신교회를 떠받들고 있는 기둥들이 뽑혀져도, 기독교의 중추적인 진리가 부정되어도, 그 흐름을 막지 못했다. 대표자들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거나 신학적으로 소양이 부족한 탓은 아닌 것 같다.

 

맑은 강물과 탁류의 강물이 합쳐지면 탁류의 강이 된다. 천둥이 치면 만물이 응하는 것처럼 함께 어울리다보면 무의식 중에 따라가고 동와된다. 성경이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라고 가르치는 데는 무슨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 신학 사상은 하루아침에 개조할 수 있거나 끌어당길수 있는 물건같은 어떤 것이 아니다. 개신교인이 로마가톨릭교회에 들어가면 그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로 개혁될 것인가? 검정색 페인트 통에 한 숟갈의 흰색 페인트를 집어넣는다고 하여 통 안의 페인트가 희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역사를 특단의 조처가 아니고서는 한 번 더럽혀진 신앙 상태에서 본래의 순수성을 되찾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16세기 종교개혁운동과 같은 특별한 사건만이 교회의 생명력 상실의 흐름을 중단시킬 수 있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로 말미암아 오염된 탁류의 강물에 뛰어들어 그것을 맑게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왜 세계의 복음주의 교회들, 적어도 전체 세계 기독교인 절반 이상으로 추정되는 기독신자들이 WCC에 가담하지 않고 있는가?


WCC의 신학적 정체성은 우리에게 신학, 믿음, 교회, 예배, 성찬, 성도의 교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믿음의 터가 다른데 누구를 향하여 함께 기도하며, 누구에게 함께 예배를 드리고, 누구 앞에서 공동의 고백을 하는 떡과 잔을 나눌 것인가? 전해야 할 것이 일치하지 않는데 무엇을 함께 전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을 고백하는 사람이 그것을 고백하지 않는 사람과 무엇을 함께 고백할 것인가?


성경은 예배와 교제와 고백에 “한 성령, 한 주, 한 믿음, 한 세례, 만유 위에 계신 한 하나님”에 대한 일치된 의미와 신앙을 요구한다.


WCC 에큐메니칼 운동과 타종교와의 ‘대화’에 열성을 보여 온 유럽과 대양주와 미국.캐나다의 교회들의 퇴락은 무엇을 말하는가? WCC 운동에 가담하면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와 달콤한 밀월을 즐기는 것과 같이 당분간은 큰 변화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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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가 WCC 문제로 분열(1959)되기 전, 총회신학교의 박형룡 교수는 선택적인 참여를 권했다. “우리 교회는 세계적 교회 친선의 중요함을 생각하여 이 운동에 참여하나 교리상 경계와 비타협의 태도를 취할 것이며, 장차 어떤 날 교파 합동의 계획이 구체화 될 때는 이 운동으로부터 단연 탈퇴할 것”이라고 했다. WCC가 로마가톨릭교회와 같은 초교회를 구성하여 개 교회들을 통제하려 한다면 이는 반대하지만, 박형룡은 “경계와 비타협의 태도로 참여”할 수도 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제안을 했다.

 

박형룡의 권고를 오늘의 상황에 적용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박형룡은 종교다원주의, 종교대화주의(상대주의 진리관), 초혼제, 종교혼합주의, 구원 보편주의, ‘거대 에큐메니즘’, 하나님의 선교-사회구원 지상주의, 로마가톨릭주의, 교황직에 대한 사도직 계승 인정, 신앙고백 형식주의, 성경불신주의라는 WCC의 신학적 특징들을 모르고 있었다. 박형룡이 걱정한 것은 대체로 WCC의 자유주의 신학과 그 교리적 동향, 용공주의, 초교회 성향이었다.

 

박형룡의 제안이 일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1958년의 상황에 걸맞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상대주의 진리관과 종교다원주의와 로마가톨릭주의에 잠식당한 오늘의 WCC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못된다. 박형룡의 ‘선택적 가입’ 권고를 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탈기독교화되고 비성경적이 된 이 단체의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범주착각과 논점일탈의 오류이다.

 

한국교회가 보이고 있는 극심한 분열 상태는 어떤 형태로든지 개혁되고 교정되어야 한다. 인간적인 연약성과 여러 가지 이유들로 말미암아 여러 교단으로 갈라진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교의 분파 상태는 효과적인 선교활동을 방해하고 교회의 사회적 신인도(信認度)를 떨어뜨린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내적 하나 됨은 외적 일치로 드러나는 것이 옳다.

 

마지막 분단민족 사회에 한국교회가 하나 되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진리 문제가 아닌 행정적인 차이와 지역성과 상호 감정의 예각(銳角)을 무디게 하여 하나 됨이 마땅하다.

 

교회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공동의 증거와 연대 협력 그리고 성공적 사명수행을 위한 성격적인 에큐미니칼운동은 필수적이다. 사회,문화 활동에도 적극적이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타종교인과 만나고 대화하고 연대하여 선교접촉점을 모색하고 사회 봉사를 함께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과 ‘오직 성경’ 원리를 포기하는 것이라면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교회의 본질은 가시적 일치에 달려 있지 않다. 외형적 기구적 단일성을 최고의 무엇으로 여기는 발상 그 자체가 이미 로마가톨릭주의의 영향이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신앙고백적인 일치이며, 성경적 진리 안의 참된 연합과 교제이다. 교단, 교파를 달리할지라도 성경이 제시하는 중추적인 진리를 믿고 고백하는 신앙공동체들은 진리 안에서 ‘주어진(불가시적) 일치’를 공유하고 있으며, 영적이며 불가견적인 참 교회 곧 ‘하나의 거룩하고 공교회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의 구성원들이다.

 

WCC는 ‘가시적 교회 일치’를 위해 참 교회의 서고 넘어짐이 달린 여러 가지 성경적 진리와 개신교회 신앙 토대를 포기했다.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와 더불어 교회의 생명력을 앗아가는 무서운 세력에게 진리의 성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구원 유일성, 역사적 기독교 신앙에 충실한 제2의 종교개혁운동이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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