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엡 6:24)
하나님의 선하심, 진실하심, 사랑, 권능은 영원불변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불변합니다. 우리에게도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중대한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행할 일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이것입니다. 인생에게 가장 불행한 일, 저주스러운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변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려면 그 사랑을 변하게 하려는 갖가지 상황에 잘 대처해 나가야 합니다.
첫째, 고난이라는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의 일생에는 여러 가지 고난이 닥쳐옵니다. 처음에는 신앙생활을 돌아보고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난이 지속되면 낙심과 회의가 밀어닥칩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의 목적이며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성경 욥기에 등장하는 욥은 훌륭한 본보기를 남겨주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욥에게 연속적인 재난이 닥쳐와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재산도 자녀도 건강도 다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일에 욥이 죄를 짓지 않으며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그 자체가 그의 존재 이유이며 가장 귀중한 자산인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그 무서운 고난을 극복해 내었습니다.
둘째, 핍박이라는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지내며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지내면 핍박 받을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성도는 그렇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서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순교한 기록만 보더라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각오가 있어야 하는 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그를 죽이려는 무리들 앞에서 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늘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는 다른 차원의 현실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여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 본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 계신 것이 그에게 보였습니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과 담대함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마 5:11)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상 주시는 주님 앞에 서는 그 날을 생각하므로 놀라운 위로와 힘을 얻어 핍박을 능히 극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유혹이라는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에 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성도들에게 다가오는 유혹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지 못하게 하는 유혹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와 진리에서 이탈하게 하는 유혹입니다. 주님의 강림이 가까워질수록 교회와 교인 수는 늘어나겠지만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갖가지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성경대로의 믿음에서 떠나 세속화의 길 그리고 세상종교와 연합하는 길로 가는 자가 많아질 것입니다. 명성이나 황금에 미혹되어 이단과 종교다원주의를 두호하고 변호해 주는 자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 외에는 천하 인간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아니하셨습니다. 이러한 믿음에 굳게 서서 요지부동하는 사람은 모든 유혹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기에 말씀한 ‘은혜’란 매우 풍성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서 다 형언할 길이 없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자’에게만 허락된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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