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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문정열 목사(증경총회장) 소천2010-04-1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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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열 목사(증경총회장, 정책위원장, 총회교역자연수원장, 성문교회 원로목사)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에 알려드립니다.

 

장례식은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대표총회장 조용목 목사) 총회장(葬)으로 거행됩니다.

 

소천일시 : 2010. 4. 18(주일)   06:45

관예식 : 2010. 4. 19(월)      15:00

발인예식 : 2010. 4. 20(화)      10:00

하관예식 : 2010. 4. 20(화)      13:00

  

장례식장 :  고대안암병원 장례식장 305호실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2

                  전화 :  02-923-4442

 

장       지 :  오산리최자실금식기도원 묘지

 

 

문 목사는 1933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 순복음신학교(제6회)와 장로회신학교(제58회), 명지대학교 경영학과, 아세아극동신학대학원, 하나님의성회 총회신학원, 한세대학교 목회대학원, 하와이 국제신학대학원(목회학박사)을 졸업했으며 1960년 4월 15일 성문교회를 개척 50년이 넘는 동안 목회사역을 감당해 왔으며 최근에는 불과 3주일 전까지도 총회 목회대학원에서 후학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쳐 왔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葬)으로 엄수된 장례식은 장례위원장에 대표총회장 조용목 목사, 장례부위원장 국내총회장 최성규 목사, 국제총회장 양재철 목사, 장례진행위원장 교단총회장 배진기 목사, 장례진행위원 총무 조승렬 목사, 서기 윤기석 목사, 재무 차제일 목사, 회계 노문규 장로 등의 조직으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3일간 은혜롭게 진행되었다.

18일 저녁에는 대표총회장 조용목 목사 집례로 소천예배를 드렸으며 19일(월) 입관예배는 교단총회장 배진기 목사의 집례로 드리고, 20일(화) 발인예배는 국내총회장 최성규 목사의 사회, 대표총회장 조용목 목사의 설교로 드려졌다.

이날 조 목사는 눅 2:25-32 말씀을 본문으로 한 설교를 통해 “고 문정렬 목사님은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아 50년을 하루같이 전심전력해 오신 분이며 목회자로서, 부흥사로서, 저술가로서, 지도자로서 존경받는 분이었다”고 전하고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바른 길을 걸어가신 분”이라고 말한 뒤 “총회의 진정한 지도자였던 문 목사님의 말씀대로 교단은 더욱 견고하게 나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날 오후 1시 오산리기도원 묘지에서 드려진 하관예배는 교단 상임운영위원 임종달 목사의 집례로 거행되었다.

고 문정렬 목사의 약력과 저서는 다음과 같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증경총회장,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서울북지방회(창립) 증경회장, 순복음신학교 이사 교수 역임, 순복음영산신학원 교수 역임, 한세대학교 목회대학원 교수 역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정책위원 역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후생복지위원 역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목회대학원 운영이사 역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헌법위원장 역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재단이사 역임, 한국부흥사 공동회장 역임, 순복음부흥사회 1,2,6대 증경회장, 시경교경연합회 부회장 역임, 서울북부지구 교회와 경찰협의회 회장 역임, 서울강북지역교회연합회 회장 역임, 서울북부경찰서 경목 역임, 경찰신문 논설위원 역임, 오순절 다락방 기도원 창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교역자 연수원장, 순복음성문교회 원로목사

저서로는 ‘새 우물을 파서 마시라’(간증목회 수기), ‘선한 목자와 선한 양이 되자’(설교1집 발행) 외 다수의 설교집과 목회자료집, ‘기도와 응답’(논문집) 등이 있다.

 

 

弔詞

 

목사님 부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이호윤 목사 - 상임운영위원, 바위샘교회 담임)

 

4월 18일은 자유당 시절 정·부통령 부정선거에 대한 고려대학교 학생항의 데모로 갑자기 몰려온 정치 깡패들의 구타사건으로 인해 1960년 4. 19 항전의 기폭제가 되었던 뜻 깊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런데 뜻 깊은 이 날 교단 발전을 위해 평생을 바친 교단의 큰 어르신 문정렬 목사님이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신 날이 되리라 그 누가 예견할 수 있었겠습니까?

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하자 우리 모두는 일순간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님은 오래도록 우리와 더불어 통합된 본 교단의 안정과 발전을 위해 최선봉에서 앞장서 주실 것으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서대문 총회회관 매각을 불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재단법인 이사직위에서 해임을 당하는 불이익을 강요 당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념을 끝까지 고수한 위대한 선구자였습니다.

목사님은 정이 넘치는 훌륭한 교육자이십니다. 오랫동안 앓아오셨던 기관지 천식으로 인해 복잡하고 혼탁한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광릉 수목원 부근에 집을 짖고 공터에 상추와 쑥갓같은 채소를 심어 놓고 제자들이 방문하면 접대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여름에는 토마토, 옥수수, 가을에는 고구마를 키워서 나누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근처 식당에서 오리찜 요리를 잘 사 주셨고 이로 인해 모두들 양아들과 양딸들이 되기를 원했고 자주 방문을 해서 친정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목사님은 한국기독교부흥에 있어서 크게 공헌한 우리 시대의 마지막 열정적인 부흥사였습니다. 문 목사님은 부흥사로서 대중을 웃기고 울리는 천부적인 소유자였습니다. 목사님은 은혜로운 설교시간이 2시간 또는 3시간이 다반사였고 때때로 방문한 제자들에게 온 밤을 지새우며 설교를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전국 각처와 해외에 부흥집회를 다니면서 강대상을 주먹으로 내리쳐서 여러개의 강대상이 망가져 이로 인해 손이 태권도 유단자처럼 두꺼워 부흥집회 도중 깡패가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교회에 왔다가 목사님의 손을 보고 슬금슬금 꽁무니를 뺐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진 일입니다.

또한 목사님은 기도에 진력하신 분입니다. 목사님이 개척하신 성문교회에서 은퇴 하신 후에도 새벽에 몇시간 동안 기도 하신 일도 모두 익히 알고 있습니다.

1980년경 미국 흑인 무어 목사의 초청을 받고 미국을 방문 무어 목사 교회에서 주일 설교를 맡았는데 약속한 영어통역인이 갑작스런 일로 참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낭패가 아닐 수 없었지만 목사님은 열심히 기도를 한 후 담임 무어 목사에게 나는 한국어 설교를 할 터이니 무어 목사는 영어로 통역을 하기로 합의를 한 후 문 목사님은 한국어로 무어 목사는 영어로 통역 설교를 하였는데 미국교인이 큰 은혜를 받았다 합니다.

그 후 현지에 있는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이 두 분의 설교를 비교해 듣고 깜짝 놀랐다 합니다. 내용인즉 설교통역이 신기할 정도로 맞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미국 사회에서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모두가 문 목사님에게만 가능한 기적입니다.

문 목사님! 지금 산과 들에는 진달래와 개나리 그리고 목련화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이러한 꽃들은 해마다 4월이 되면 앞 다투워 피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진달래와 개나리 그리고 목련화를 볼 때마다 문정렬 목사님이 생각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문정렬 목사님을 그리워하는 것은 교단통합 이후 이를 훼방하는 자들로 인해 이를 대처하느라고 우리와 함께 탄식하며 고생하다가 가셨기에 모든 후배와 제자들은 목사님이 더 더욱 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님, 저를 비롯한 후배와 제자들은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를 마저 하지 못한 채 목사님과 헤어졌습니다. 목사님,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를 알고 계십니까?

“목사님, 사랑합니다, 목사님, 존경합니다.” 우리 모두는 목사님이 떠나시기 전에 왜 이 한마디를 끝내 하지 못했을까?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이 두 뺨을 적십니다.

목사님, 단 5분 만이라도 대화를 나누면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소리쳐 불러 보고 싶습니다. 미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의 독백이 우리를 울리고 있습니다.

목사님, 하늘나라에는 교단통합으로 인한 아픔은 없겠지요. 재단이사에서 제명되는 아픔도 물론 없겠지요. 목사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십시오. 목사님, 목사님이 그리워 질 때면 꿈 속에서라도 이따금씩 만나주십시오. 목사님이 바라시던 통합된 교단의 권리회복 완수를 소리 높여 알려 드리겠습니다.

목사님, 부디 편히 쉬시기 바랍니다. 목사님,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사랑했노라고 말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2010년 4월 20일

                                                     

                                                              이호윤 목사 드림

 

 

 

 

아버지 품안에서 편히 쉬십시오(이원희 목사 - 교단 인권존중회, 광화문교회 담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통합교단 고 문정열 정책위원장 및 교역자 연수원 원장 목사님께서 2010년 4월 18일에 향년 77세를 일기로 하나님 아버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삼가 애도를 표합니다.

태양은 새벽 여명기에 말없이 떴다가 저녁 석양 노을에 아무런 말없이 지기만합니다. 그러나 태양은 진종일 빛을 비침으로 많은 말을 했습니다.

위인이나 의인의 나고 가심도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결 같은 의의 투쟁 자취로 묵언이 우리 후진들에게 많은 말을 해 줍니다.

모세도 애굽에서 한 레위 가정에서 태어나 모압 지역 산골짝에서 말없이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러나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쓰임으로, 오고 오는 세대들에게 많고 많은 말을 웅변으로 말해 주었습니다. 다윗도 예수님도 말구유간 아니면 목동신분으로 말없이 태어나서 말없이 세상을 떠났지만 자기 몫 하나님께 쓰임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림으로 후 세대에는 주옥같은 영원한 모범과 행함의 말씀을 남겨주었습니다.

문정렬 목사님은 시대적으로 비운의 식민지 지배하에 태어나서 해방을 맞기도 했으며 곧 이어 이념의 전쟁인 6.25 전쟁을 겪어야 했고, 개개인적으로는 보리 고개라는 가난과 전쟁을 치러야했으며, 4.19 혁명, 5.16 혁명, 민주화투쟁, 산업화를 이루는 격변기에 복음을 접했고 20대 후반 때부터 성령님과 동행하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교회개척목회의 생애를 경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으로 교단이 자리잡아가는 격랑의 중심에 서서 교단 항해의 키잡이 조타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2007. 5. 22. 제56차 정기 총회에서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교단통합결의 완성이후에도 증경총회장으로 재단이사로 정책위원장으로 선두에서 적극 참여하여 지도를 해주었으며 교역자연수원장으로서 2009년도 회기 6차 교역자연수 중 제5차 교역자연수까지 잘 마치고 제6차 교역자 연수교육일 바로 전날이자 문 목사님이 1960년 4월 18일 서울 삼양동 순복음성문교회 창립개척일인, 성역 50주년이 되는 날인 2010. 4. 18. 그 토록 사랑했던 사모님과 자녀 2남 2녀 가족을 남기고 먼저 천국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셨습니다.

높은 도덕률을 가지셔서 거짓을 미워하시고 타인을 의심치 아니하였기에 남에게 속거나 이용당하는 일이 많아서 문 목사님을 존경하고 따랐던 후배들은 한 때는 마음이 무척 아픈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아쉬움이 오히려 한 점 흐트러짐이 없이 선한 목자로서 달려갈 길을 달려간 경주였습니다.

목사님께는 모난 성격을 찾아볼 수 없고 언제 대하여도 순백의 정금같이 좋기만 하여 지금 후배들에게 애잔함으로 다가 오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문 목사님의 열강의 주제는 언제나 ‘원색적인 오순절 성령충만’이었습니다.

개척하여 만 40년이 넘게 목회를 하셨던 순복음성문교회 성도가 그리워 순복음성문교회 원로목사로 다시 돌아가고 싶으니 나를 도와 달라고 호소하셨던 그 소원은 그대로 가슴에 안고 삼양동 순복음성문교회를 다시 한번 뒤 돌아보시면서 천국에 입성하였습니다.

교역자 연수교육을 통하여 반석같이 견고하게 다져진 통합교단과 교단미래에 부흥과 발전을 위한 초석을 든든하게 닦아주시고 천국에 입성하였습니다. 못다 이룬 부분은 후배들에게 맡겨주시고 이제는 아버지 품안에서 편히 쉬십시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성령님의 권능을 입어 문 목사님이 그토록 사랑하시고 헌신하셨던 우리 교단을 위하여 또 힘차게 전진 할 것입니다.

                                                            

                                                              2010년 4월 20일

                                                          

                                                            이 원희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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