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자와 신령한 생활’
“…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4,15)
우리가 사용하는 말 중에는 어떤 분야나 조직체의 구성원들 사이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구속, 속량, 대속, 섭리, 재림, 휴거, 부활, 보혈 등의 말은 교회에서 많이 사용합니다. “신령하다”는 용어 역시 그러합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신령한 자”가 되어야 하고 또한 “신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급선무는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입니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서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되므로 “육에 속한 사람”이라는 말은 저주에 속하는 말입니다. “신령한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을 일컫는 호칭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그대로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자기 존재의 바탕과 깊이에서, 영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죄인이 의인이 되고, 마귀의 종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성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신령한 생활에 힘쓰는 것입니다.
첫째, 예배하기를 즐거워하는 것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롯은 죄악이 극심한 소돔 고모라가 있었지만 목축하기에 유리한 요단 온 들을 택하고 소돔 성에 들어가 살았습니다. 롯의 가족들은 그 곳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예배를 등한히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당할 때 롯은 재물을 모두 잃고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어버리는 환난을 겪었습니다. 반면에 아브라함은 헤브론 산지를 택했습니다. 그곳은 흐르는 강이 없었고 목초가 넉넉하지 않아 때를 따라서 적절하게 우로가 내려야만 물이 있고 풀이 났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의지해야 했습니다. 세속적인 삶에 젖게 된 롯은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되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와 과제로 삼는 신령한 생활을 한 아브라함은 창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예배를 즐거워하는 생활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둘째, 자신의 능력과 수완보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복 주심을 의지하고 사모하는 것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보다 육신의 능력은 열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의 도우심 아래 살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야곱은 신령한 복을 사모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복을 추구했기 때문에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모하는 것이 신령한 생활 태도입니다.
셋째, 주님의 재림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관한 징조들이 예언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그 재림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늘 생각하고 갈망하는 성도는 항상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생활합니다.
넷째, 주님의 칭찬과 상급을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주 앞에 서는 날 칭찬 받고 상 받기를 기대하며 살아가는 성도는 주의 일에 힘쓰며 살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헛된 일에 낭비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며 성도를 섬기는 일에 사용하게 됩니다.
다섯째, 천국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것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와서 굉장한 부자가 되었어도 항상 천막에 살았습니다. 이는 그의 본향이 하늘이며 나그네와 행인으로 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는 동안 나그네와 행인으로 사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하늘 도성, 우리 주 예수님이 예비하신 아버지의 집을 늘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령한 생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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